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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e's 책리뷰/단편소설

모든 단편 해석《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책리뷰

by 박꿀벌 2021.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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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실린 모든 단편의 줄거리를 간단 요약하고, 해석을 정리했다. 바로 아래 "글의 순서(목차)"에서 1~9번으로 숫자로 표시해뒀으니 스크롤을 내려 원하는 작품을 읽어 내려가면 된다.  

제목 :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저자 : 김영하 💚출판사 : 문학동네
💚출간일 : 2019.08.09 (1판20쇄) 💚구매 여부 : 도서관 대출
💚읽은 날짜 : 2021.07.29~21.07.31 💚총평 : ★★★☆



📚 글의 순서

1.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2. 사진관 살인사건

3. 흡혈귀

4. 피뢰침

5. 비상구

6. 고압선

7. 당신의 나무

8. 바람이 분다

9.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10. 전체적인 감상


1.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1-1. 줄거리

주인공은 출근길에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보게된다. 핸드폰이 없어 그 자리에서 신고를 하지 못하고 구해주지도 못한 채 다시 출근하게 된다. 신경이 쓰여 신고를 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핸드폰을 빌려보지만 아무도 빌려주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출근길에 다시 올랐지만, 출근길은 다사다난했다. 차사고를 당하고 치한으로 몰리는 등 안 좋은 일이 거듭 발생하여 결국 지각을 하게 된다. 회사 업무를 무사히 마치고 저녁에 집에 돌아오니 엘리베이터의 낀 남자는 사라지고 엘리베이터도 정상 작동하였다. 경비원에게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에 대해 물어봤지만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1-2. 해석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는 현대인의 철저한 무관심을 말하는 소설이다. 소설에 나오는 모든 내용이 무관심에 기초를 두고 있다. 주인공이 다른 사람에게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에 대해 말하여도 모두 무관심하게 흘려듣는다. 주인공이 회사에서 엘리베이터에 갇혔을 때 경리부 미스 정도 혼자 엘리베이터를 빠져나간 후 구조요청조차 해주지 않는다. 회사에 도착했을 때 주인공이 구두도 벗겨지고 옷도 넝마가 되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주인공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신경쓰고 있어서 타인에게 무관심하진 않은 거 같지만 전혀 아니다. 우선 주인공은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끼었어도 심각하게 여기질 않는다. 입으로는 그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고 얼른 신고를 해주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절박함이 전혀 없다. 한 사람의 목숨보다 자신의 출근이나 안위가 훨씬 중요한 문제이다. 주인공의 무관심은 버스 사고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나는 이제 더이상 버스카드 일로 추궁당하지 않게 된 것이 적이 기뻤다." - 12p

방금 전에 트럭과 추돌사고를 겪고 버스기사가 사망했다. 한 사람의 생명이 사라진 순간에 고작 버스카드 일로 추궁당하지 않은 게 기쁘다니... 필자는 읽으면서 살짝 소름이 돋았다. 이런 행동은 타인에게 무관심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다.

 

무관심한 것을 드러내는 장면은 또 있다. 주인공이 엘리베이터에 구두를 놓고 와서 다시 찾으러 갔을 때 아무도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또한 퇴근 후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에 대해 물었을 때도 아무도 알지 못한다. 한 개인에게 치명적인 사건들이 관심을 받지 못한 채 기억조차 되지 못하는 것도 무관심이 만연하기 때문이다.

 

김영하 작가는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를 통해 현대인의 무관심을 비판하였다. 어쩌면 교류가 단절된 현대사회인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충격에서 헤어난 사람들은 너도나도 핸드폰을 꺼내기 시작했다. 조금 전 나에게 핸드폰이 없노라던 마자도 예외는 아니었다.....(중략)...... 나는 전화를 마친 사람에게 핸드폰을 좀 빌려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걸 데가 있다면서 빌려주지 않았다.

 

2 사진관 살인사건

2-1 줄거리

일요일 교회에 있던 형사는 살인사건으로 호출을 받아 경찰서에 출동한다. 사진관 주인이 둔기를 맞고 살해된 사건이었다. 현장의 최초 목격자인 사진관 주인의 아내 '지경희'는 조사받는다. 지경희는 사진관에 찾아와 누드 사진을 인화하는 '정명식'을 의심한다. 정명식을 불러들여 조사를 해보니 지경희가 자신에게 추파를 던졌다고 말한다. 형사는 지경희와 정명식의 불륜에 초점을 맞춰 수사를 진행하던 중 전혀 다른 곳에서 범인을 찾게 된다. 지경희와 정명식에 대한 혐의는 풀렸지만 형사는 사진관에 다시 찾아가 본다. 그곳에서 정명식과 지경희는 실제 불륜 사이였음을 알게 된다. 

 

2-2 해석

<사진관 살인사건>은 특별히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없는 것 같다. 이 소설에서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주인공인 형사가 사진관 살인사건을 수사하면서 마음속에 변화가 생기고 아내와의 관계가 변화한다는 것이다.

 

형사는 강력 사건을 담당하며 사건의 진상을 파해치기 위해 사람들의 은밀한 사생활을 바라보게 된다. 이런 경찰의 입장에서 사람들에게 개인적인 삶이란 없다고 한다.

 개인적인 삶이란 없다. 우리의 모든 은밀한 욕망들은 늘 공적인 영역으로 튀어나올 준비가 되어 있다 - 68p

이 구절에서 알 수 있듯 형사는 특정 사건을 마주하면 일로써 사실관계를 밝히고 필요한 사생활을 파헤칠 뿐이다. 형사는 여러 사건을 처리해 가면서 치정살인이나 윤간같은 사건을 마주해도 특별한 감정이 발생하지 않을 정도로 무뎌졌다. 이런 흐름 속에서 형사는 아내의 외도를 목도했다.

 

형사의 아내는 과거 외도를 하다 형사에게 들켰다. 형사는 아내의 외도 상대에게 권총을 겨누고 위협을 하며 분노하지만 아내에게는 어떠한 추궁도 하지 않는다. 형사는 아내의 외도를 남편의 입장에서 마주한 것이 아니라 경찰서에서 처리되는 '하나의 사건'으로 대한 것이다. 형사의 이런 대응으로 형사는 형사 스스로 "아내를 추궁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아내는 자신의 남편을 잃은 느낌을 받게 되었다. 그때부터 아내는 몸에서 뭔가 빠져나간 듯 변하였고 기독교를 열렬히 믿기 시작했다. 그 이후 아내가 자신에게 등을 돌리고 예수만을 바라보고 있음에도 예수가 자신이 줄 수 없는 것을 충족시켜 준다는 생각에 방치할 뿐이다.

 

형사의 태도를 변화시켜준 것은 사진관 살인사건이다. 살인사건의 수사방향은 지경희와 정명식의 불륜으로 인한 치정살인일 것이라고 추측하며 조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건의 범인은 지경희의 남편이 다니던 다방과 관련이 있었다. 즉 지경희와 정명식의 불륜과는 아무 관계가 없었다. 이것은 형사가 사건을 대하는 방식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사건 속 불륜을 하는 지경희는 형사의 아내와 비슷한 면이 있다. 남편에게 관심을 받지 못하고 무료한 삶을 보내는 아내라는 모습이 겹쳐 보인다. 이처럼 형사는 지경희의 처지를 통해 아내의 마음을 살펴보게 되었고, 자신이 아내를 대하는 태도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집에 돌아온 형사는 오줌 묻은 이불을 빨래하던 아내의 발을 붙잡는다. 그동안 추궁하지 않던 아내를 추궁하며 아내의 마음을 마주보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아내는 칼질을 통해 자신의 사생활에 접근하는 것을 거부한다고 표현한다. 꿈속에 들어간 형사는 자신의 속살을 보여주는 사과가 되며 웃는다. 항상 타인의 사생활만 들춰내고 제삼자의 입장에 서 있던 형사의 시선에서 벗어나 아내를 추궁하며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모습이 되며 해방감을 느끼는 모습이다.

 

그동안 아내가 남편에게 등 돌리고 예수에 의지한 시간이 길기 때문에 형사의 변화로 형사와 아내의 관계가 개선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형사의 태도가 변화한 것으로 둘의 관계는 어떤 형태로든 변화할 것이다.

 

(참고, 사진관 살인사건은 제대로 해석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다른 해석이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남겨주시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3 흡혈귀

3-1. 줄거리

김영하 작가가 김희연에게 받은 편지를 소개하는 내용이다. 편지의 내용은 김희연의 남편에 대한 이야기이다. 김희연은 바람둥이 감독 지망생과 만나고 있던 중 어느 한 시나리오 작가를 만나게 된다. 그는 사람을 꿰뚤어 보는 듯한 눈을 가지고 있었고, 바람둥이 감독 지망생이 김희연을 버리고 파리로 유학 갈 것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시나리오 작가와 김희연은 이후 연애하다 결혼하게 된다. 그녀는 평범한 결혼생활을 보냈지만 날이 지날수록 남편의 이상한 행동을 알게 된다. 성관계에 관심 없고, 지식이 너무 해박하며, 서재에 관을 숨기고 있다. 또 일반적인 음식을 좋아하지 않고 피가 흐르는 스테이크만 즐긴다. 이 사실을 토대로 김희연은 남편이 흡혈귀라고 판단하였다. 편지를 다 읽은 김영하 작가는 남편이 아닌 김희연이 흡혈귀라고 생각한다.

 

3-2. 해석

<흡혈귀>는 마녀사냥같은 낙인과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기서 말하는 마녀사냥은 중세 유럽에서 시행됐던 역사적 사실뿐만 아니라 현대에서 발생하는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포함한다.

 

사람들은 다수의 취향, 행동방식등을 일반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나머지를 이상하고 특이한 것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다수의 행동방식을 모든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하는 규범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 규범에 벗어나는 사람은 눈에 띄고 특이한 사람이 된다.

 

사람들은 특이한 특징을 가진 사람을 보면 낙인을 찍는다. 김희연은 남편을 흡혈귀라고 낙인찍었고 중세 유럽에선 마녀라고 낙인 찍었고, 현대에선 사회 부적응자, 중독자 등의 말로 상대를 낙인찍는다. 규범에 잠식된 사람은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고 낙인을 찍을 뿐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비슷하다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적이다. 사람은 유전적으로든 실질적인 행동방식이든 모두 다르다. 당연하게 사고방식도 다르다. 하지만 사회는 서로 다름을 이해하지 못한다.  김희연의 남편은 말한다.

모두가 다 아이를 가져야 한다고 믿는 이 사회가 더 이상한 거 아닌가? - 102p

김희연의 남편은 모두가 같은 생각으로 같은 행동을 해야하는 것이 비정상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메모를 통해서 다수가 소수를 억압하는 상황을 비판적으로 묘사한다.

세상의 모든 흡혈귀들은 거세당했다. 세상은 빛으로 가득하다. 어디에도 숨을 곳은 없다. 우리는 흡혈의 자유와 반역의 재능을 헌납당했고 대신 생존의 굴욕만을 넘겨받았다. - 103p

우리 사회는 사람들을 정상범주에 욱여넣어서 다양한 사고를 펼쳐나갈 수 없게 만든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독자적인 사고는 제한당하고 적당히 생존만 하는 굴욕적인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낙인으로 강화된다.

 

김영하 작가는 마지막에 김희연 같은 사람이 흡혈귀라고 말한다. 사람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괴물이라고...

 


 

4. 피뢰침

4-1. 줄거리

주인공은 어느날 벼락을 맞고 살아난 사람들의 모임인 '아다드'를 알게 된다. 벼락을 맞고 살아났던 주인공은 그때부터 벼락 맞은 날의 불쾌한 기억이 떠오른다. 관심을 가지고 조사를 하다 모임에 참석하고 결국 정회원이 된다. 아다드의 목적은 벼락을 다시 맞기 위해 탐뢰여행을 떠나는 것이었다. 아다드의 회원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모임에 탈퇴할 수 없었던 주인공은 탐뢰여행마저 참여하게 된다. 탐뢰여행에서 벼락을 맞지는 않았지만 벼락 맞은 사람과 키스를 하여 간접적으로 전류를 느낀다. 탐뢰여행 이후 그때를 떠올리며 그림을 그린다.

4-2 해석

<피뢰침>은 "몰입상태"를 말하는 작품이다. 이 책의 주된 이야기는 탐뢰여행을 떠나는 아다드에 가입하여 벼락 맞는 순간을 바라본 경험이지만, 전격을 맞는 순간을 몰입으로 비유하였고 글 중간중간 몰입 상태를 묘사하는 표현이 많이 나와 결국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것은 몰입을 추구하는 행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몰입을 표현하는 문장을 몇 개 예를 들겠다.

 "누구나 살아가다보면 한 번쯤 잊지 못할 경험을 한다. 문제는 그 경험이 아주 짧고 강렬했을 때 발생한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디테일들은 부정확해지고 나중엔 그런 일이 정말로 있었나 샆은 지경이 된다." - 109p

"기껏해야 평생 한 번 혹은 두 번 정도 찾아올 희열을 위해, 자신을 던지는 걸까요?" - 127p

"...(중략)... 자아를 뛰어넘는, 그 경지에 이를 때까지...(중략) " -128p

 

아다드의 회원들을 비롯한 J는 왜 그렇게 몰입 상태를 추구할까? J의 경우2가지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 J는 전격이 흐르고 공포라는 감정이 엄습한다고 말하였다. 이것은 몰입상태를 설명하는 비유인데 몰입은 어느 순간 갑자기 찾아와 홀연히 사라져 버리고, 사라진 뒤에 비로소 자신이 몰입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즉 몰입을 관찰하거나 그에 대한 감정을 몰입 상태일 때는 느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몰입 상태는 위에서 표현하듯 '희열', '자아를 뛰어넘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어, 몰입 상태일 때 그 순간을 즐기고 싶게 만든다. 즉, J는 몰입상태와 몰입이 전하는 감정을 동시에 느껴지도록 하고 싶은 것이다. J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공포와 전류를 일치시키는 겁니다. 그때, 당신 스스로 전격이 되어 하늘과 땅으로 방전하는 거지요. 당신은 대기와 대지와 당신 몸의 주인이 되는 겁니다." - 125p

 

J는 몰입상태를 느끼는 것 이외에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는 것 같다. 이는 디오니소스 탄생 설화를 통해 추측할 수 있다. 설화 속 세멜레는 전격(몰입)을 상징하는 제우스를 만난 뒤 디오니소스를 가지게 된다. 이후 제우스의 진정한 본모습을 마주하고 싶어 하다가 사망하고 디오니소스만 세상에 남기게 된다. 이 설화를 <피뢰침>에 한정하여 해석해보면, 한 인간이 몰입 상태를 경험한 이후 몰입의 본모습을 추구하다 자신은 인생을 종말을 맞게 됨과 동시에 세상에 큰 영향을 끼치는 어떤 작품 또는 행위(디오니소스)를 남기는 내용이다. 실제 몰입을 경험했던 사람들은 세상을 놀라게 하는 무언가를 남기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J는 스스로 세멜레라고 생각하며 벼락을 맞는 행위를 반복하여 디오니소스와 같은 어떤 것을 세상에 남기고 싶어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이처럼 <피뢰침>은 몰입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전격을 맞기 위해 탐뢰여행을 다니는 아다드의 사람'으로 표현하고 이를 피뢰침으로 다시 비유하였다. 즉 몰입을 갈구하는 사람이 피뢰침인 것이다. 작가님이 이 이야기를 통해서 몰입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한 것 같지는 않다. 단지 몰입을 추구하는 삶을 보여주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그럼 우리 독자들이 몰입을 느끼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대답은 J를 통해 알 수 있다.

 

J는 아다드의 다른 인물에 비해 전격세례를 더 많이 맞았다. 하지만 작품 속에서 묘사한 것처럼 벼락은 언제 내리칠지 몰라 탐뢰여행을 떠난다고 반드시 맞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J는 더 많은 벼락을 맞았다. 그 이유는 J는 하나의 피뢰침인 동시에 눈에서 세인트 엘모의 불이 타오르기 때문이다. 이 비유를 알기 위해 잠시 피뢰침의 원리를 생각해보자. 피뢰침이 뾰족한 이유는 전하가 작은 표면적에 모이는 성질을 이용하여 벼락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전하가 모인다는 것은 대전되어 있다는 것인데, 전하가 더 모여있는 것을 눈에서 세인트 엘모의 불이 타오르는 것으로 비유한 것이다. 즉 이를 통해 몰입은 단순히 기다리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추구하는 사람에게 찾아온다는 것을 멋지게 비유한 것 같다.

 

또한 몰입이 찾아오기 전에 그것을 미리 예견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것은 벼락이 내려치기 전에 맡을 수 있는 락스냄새로 비유했다. 락스 냄새를 통해 몰입을 준비하며 마음을 다잡을 수 있다.

 

몰입을 경험하기 위해선 자신의 분야에서 꾸준하고 열정적으로 일을 수행하는 준비가 필요하고 몰입을 즐기기 위해선 몰입이 오기 전에 느껴지는 징조를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한다.

 


5. 비상구

5-1 줄거리

김우현은 여관방에서 여자애와 장기 투숙하며 지낸다. 두 사람은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간다. 여자는 돈을 벌기 위해 술집에서 일하는데 어느 날 모욕을 당하여 손님 머리를 내려친다. 분노한 손님은 여자를 폭행했고, 우현은 이를 알고 자신의 친구 종식이와 함께 뻑치기를 하게 된다. 하지만 범행 후 바로 발각되어 택시와 경찰에게 쫓긴다. 우현은 성공적으로 달아났지만, 종식이는 실랑이를 벌이다가 차에 치이고 병원에 후송된다. 후에 우현의 존재까지 알게 된 경찰이 우현이 머무는 여관에 찾아오고 우현은 창문으로 도주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젝스키스-기사도"의 가사는 비상구의 스토리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것 같다.)

5-2 해석

<비상구>는 방황하는 청소년에게 탈출할 수 있는 비상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우현은 학창시절 학교는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자퇴와 함께 가출을 한다. 구겨져 나와 종식이와 친하게 지내고 여관방에서 함께 생활하는 여자도 만나게 된다. 우현, 종식, 여자애는 모두 규정된 사회의 틀 밖으로 벗어난 인물들이다. 사회가 원하는 인재가 되기를 거부하고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다.

 

작품 속 체제를 벗어난 우현과 여자는 불안정한 삶을 살고 있다. 하루를 버티기 위해 돈을 벌고, 돈이나 물건을 얻기 위해 절도나 뻑치기를 한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와 같은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않고 변하기를 바란다. 즉 이 순간에서 벗어날 비상구를 찾고 있다. 삶이 어두워질수록 더 선명하게 빛나는 비상구를 원한다.

 

작중 등장하는 여자는 마트에서 평생 사지 못할 거 같다는 이유로 뒤집개를 산다. 이는 자신의 삶이 될 수 있었던 가능성을 바라보며 붙잡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또한 우현도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것, 이삿짐 옮기는 직업을 갖는 것 등 여러 가지 중에 고민한다. 현재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비상구를 찾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작품 <비상구>는 인물들이 통과할 수 있는 비상구가 없다는 듯이 묘사한다.

 

음모를 면도한 여자애는 다시 어려진 기분이 든다고 말하고, 면도해주던 우현도 울컥하여 눈물을 쏟게 된다. 이후 두 사람은 잠에 쉽사리 들지 못하고 뒤척인다. 이는 과거를 생각하며, 자신이 지금 이 상황에 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후회를 표현하는 것 같다. 과거를 돌아간다면 다른 인생을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현재를 바꿔주는 과거를 하나의 비상구로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과거로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현이 생각하는 또 다른 비상구는 복권이다. 복권에 당첨된다면 현재 삶을 청산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우현은 여자애가 돼지꿈을 꾸어서 복권에 당첨될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 하지만 모두 꽝이 나온다. 또 하나의 비상구는 인물들을 들여보내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형사가 들이닥치기 전 우현은 비상구가 깨끗하다고 묘사한다. 원래 비상구로 통하는 길이 정리되어 깨끗하면 위험할 때 탈출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비웃 듯 우현이 비상구가 깨끗하다고 말하는 순간 형사가 들이닥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작품 속에서는 우현이 체포되는 장면이 나오지 않았지만 도주는 실패할 것이다.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스스로 구겨져 들어갔다고 표현하고 이를 탈출하기 위한 비상구가 필요하다는 듯이 말하지만 모든 비상구는 막혀있다. 김영하 작가는 이를 통해서 비상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방황하는 청소년이 스스로 그 상황을 벗어나는 것은 힘들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 비상구가 될 수 있는 것은 '누군가가 자신을 떠올리고 신경 써주고 손을 내밀어주는 행위, 즉 누군가의 도움뿐이다.

 

작품 속 인물들은 그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거 같다. 여자가 우현에게 3번의 자위를 요구한다. 여자는 자신을 떠올리는 누군가를 바라고 있다. 우현은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실제로 자위를 할 때 생각처럼 쉽지 않다고 했다. 우현도 누군가가 자신을 생각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기에 힘들었던 것 같다.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언제 올지 모르는 도움을 기다리는 처지는 청소년들을 더욱 암울하게 만든다.

 

우리 사회는 방황하는 청소년을 도와줄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현재 서울시에서는 청소년 이동 쉼터 여우별을 운영 중이라고 한다. 이런 프로그램을 많이 마련하여 청소년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으면 한다.

 


6. 고압선

6-1 줄거리

그 남자는 점쟁이에게 "사랑을 하면 너는 사라질 거야"라는 예언을 듣는다. 터무니없는 소리라 여긴 그 남자는 일상으로 복귀한다. 은행원인 그 남자는 어느 날 은행을 찾아온 대학 시절에 알고 지낸 한 여자를 만나게 된다. 대학 시절, 남자는 여자가 친구 B의 여자 친구여서 바라만 보았지만 항상 마음속에 흑심을 품고 있었다. 사회인이 되어 만난 여자에게 또다시 이끌려 술을 먹고 성관계를 맺는다. 그와 동시에 남자는 연정을 품게 된다. 여자를 처음 만난 순간에는 눈이 침침한 줄만 알았는데, 여자를 만날수록 남자는 점점 투명해지고 있었다. 자신이 사라질까 두려워 여자에게 이별을 고하지만 잊지 못하고 다시 찾아갔고 결국 완전한 투명인간이 된다. 남자는 옷을 벗어던지고 직장에도 나가보고 여자를 찾아가 보지만 자신을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6-2 해석

<고압선>은 사회적 관계를 표현하는 소설이다. 원래 처음 읽고선 다른 방식으로 해석을 했었다. <고압선>은 사랑에 눈이 먼 남자가 점차 파멸로 이르는 내용을 다룬 소설이라고 생각해서, 고압선을 만지면 사랑처럼 짜릿하고 한번 만져보고 싶은 충동이 일지만 결코 넘으면 안 되는 경계선을 비유했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다시 보면서 해석의 방향이 바뀌었다.남자가 여자와 맺었던 관계는 사랑이라고 부를 수 없고, 남자가 품은 감정조차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주인공의 이름이 소설 속에서 단 한 번도 나오질 않는다. 그 남자라고만 지칭될 뿐이고, 남자는 은행원, 아내의 남편, 어머니의 아들 등등으로 표현될 뿐이다. 이를 통해 사회적 관계를 표현하는 소설이라고 해석하기 시작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람의 정체성을 정해주는 하나의 요소는 사회적 관계이다. 한 사람은 사회에서 수많은 관계망을 형성하고 있다. 관계가 연결되어있는 강도도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이때 이와 같은 관계망이 모두 사라진다고 생각해보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완벽한 타인이 된다. 누구에게도 인지되지 않는 철저한 남이 되는 것이다.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주변을 살피지 못하게 된다. 친구관계나 사회적 책무에 소홀해지는 경우가 많다. 사랑을 하게 되면 서서히 사회적 관계망이 흐려지는 것이다. 사랑뿐만 아니라 모든 욕망도 유사하다. 욕망이나 욕구에 빠져 그것에 몰두하면 주변을 신경 쓰기 힘들어진다. <고압선>에서는 사랑으로 예시를 들었지만 사회적 관계망을 흐리는 것은 모든 욕망이라고 볼 수 있다.

 

<고압선>을 보면 남자가 여자에게 푹 빠지면서 몸이 흐려지고 주변 사람이 인식을 하지 못한다. 여기서 몸이 보인다는 것은 타인과 사회적 관계가 맺어져 있는 것을 표현한 비유이다. 사회적 관계가 형성되어 있으면 상대는 남자를 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남자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처음 여자와 만난 이후 차장은 남자가 약간 흐릿해 보인다는 걸 눈치 채지만 남자의 존재를 잘 인식하다. 반면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남자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부딪힌다. 한 번 만나고 헤어지는 종업원과 손님 사이와 같은 일회성 만남에서도 그것이 나타난다. 시간이 흐를수록 몸은 점점 흐려지고 여자마저 자신을 잘 보지 못하지만 아내와 엄마는 남자를 또렷하게 인식하고 있다. 이는 아내-남편, 엄마-아들의 사회적 관계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마지막 날에 모든 것이 급변한다. 모든 사람에게 투명인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투명인간이 되어버린 순간 직장에 다니지도 못하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불가능해졌다. 집에 돌아와 보니 엄마와 아내마저 남자를 보지 못한다. 엄마와 아내는 투명해진 남자를 두고 이제 생활비와 유자 금은 어떡하냐는 한탄을 하기 시작한다. 안타깝게도 남자와 엄마, 아내 사이에 연결되어 있는 사회적 관계는 돈으로 이루어져 있었던 것이다. 투명인간이 되어 사회생활이 불가능해지고 돈을 벌어올 수 없게 되자 아내와 엄마에게도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사회적 관계가 끊어져 버린 것이다. 이 순간부터 남자는 처저히 고립되었다. 

 

투명인간이 된 후 은행에 가보니 자신의 자리는 다른 사람으로 채워지고, 여자에게 찾아가니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다. 이것은 욕망(사랑)에 눈이 멀어 사회적 관계가 끊어지면 다시 회복하기 힘들거나 회복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 결과 남자는 계속 사회에서 고립된 투명인간으로 살아간다.

 

작품의 제목인 고압선은 이런 사회적 관계망을 표현하는 말이다. 고압선은 도시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꼭 필요한 망이다. 하지만 고압선이 전봇대 위에 걸려있는 걸을 보면 미관을 해치는 것 같고, 눈에도 매우 거슬린다. 예쁜 하늘과 마을의 모습을 보기 위해 사라졌으면 좋겠는 존재이다. 하지만 혼자 산속에 살 것이 아니면 없앨 수 없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사회적 관계망이 고압선처럼 필수적이어서 없앨 수 없다. 하지만 무언가를 열렬히 욕망할 때는 눈에 거슬리는 존재이다. 사회적 관계망을 다 없애기 위해선 관계망을 모두 끊어버리고 사람 없는 곳에 혼자 사는 수밖에 없다. 사회적 관계망으로 비유된 고압선은 거슬리지만 필수적인 것이다.

 

작품 <고압선>은 우리가 무언가에 눈이 멀 때 소중한 사람들을 신경 쓰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7. 당신의 나무

7-1 줄거리

당신(주인공)은 심리테스트를 하는 상담자이다. 당신은 피상담자 여자를 만나게 되는데, 둘은 가까워져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점점 관계가 깊어지고 여자는 당신에게 가정을 꾸리자고 요구한다. 하지만 당신은 여자가 자신의 삶에 침투하는 것에 거부감이 들어 이별을 고하고 잠적한다. 여자는 당신을 찾아내지만, 찾아와서 한 말은 당신을 잊겠다는 것이다. 당신은 여자에게 전화를 걸어 붙잡았다. 하지만 결국 이별을 맞이하고 당신은 앙코르와트의 사원으로 떠난다. 어린 시절부터 모든 것에 침투하여 파괴하는 나무가 두려웠던 당신은 앙코르와트에서 나무를 바라보다 승려를 만났다. 승려는 나무는 파괴함과 동시에 무너지지 않게 버팀목이 되어준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떠난다. 나무의 또 다른 측면을 깨달은 당신은 여자에게 다시 전화를 건다.

7-2 해석

<당신의 나무>는 인간관계, 특히 사랑은 서로를 파괴하고 지지하는 것이라는 메세지를 전한다. 즉 인간관계는 서로가 서로의 삶에 침투하는 행위인 것이다.

 

주인공인 당신은 어린 시절부터 나무를 두려워했다. 당신에게 나무는 파괴적이다. 언제 심어진 씨앗인지도 모르지만 일단 자라기 시작하면 땅을 그악스럽게 움켜잡고 점점 거대해진다. 그리고 자신이 나아가는 방향에 있는 모든 것에 침투하여 부순다. 필자는 항상 어떤 씨앗이 자신에게 들어와 나무로 자라는 것을 두려워했다. 자라난 나무가 자신을 파괴하여 부수어 버리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관계가 깊어져 자신의 삶에 불쑥 들어온 여자를 자신을 파괴해버릴 나무로 생각하여 도망가버린다. 

 

앙코르와트에서 승려와의 대화는 당신의 인식을 180도 전화시켰다. 승려는 나무의 파괴적인 성질을 두려워하는 당신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나무가 돌을 부수는가, 아니면 돌이 나무가 가는 길을 막고 있는가?...(중략)... 세상 어디는 그렇지 않은가. 모든 사물의 틈새에는 그것을 부술 씨앗들이 자라고 있다네....(중략)... 나무는 두 가지 일을 했다네. 하나는 뿌리로 불상과 사원을 부수는 일이요, 또 하나는 그 뿌리로 사원과 불상이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도록 버텨주는 일이라네." - 233~234p

당신은 나무의 두 번째 기능인 "지탱"을 듣고 나무에 대한 생각이 변한다. 그리고 자신이 여자의 나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여자가 자신의 삶에 침투하여 파괴한 것처럼, 당신도 여자에게 날 선 톱날 같은 말을 해서 여자를 파괴하고 여자의 삶에 침투하였던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을 한다. 당신은 이 순간 인간관계의 상호 연관성을 깨닫게 된다.

 

사회적 동물인 사람은 인간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삶의 일부분을 타인과 공유한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공유하는 삶의 영역이 넓어진다. 이처럼 공유하면 상대가 나를 변화시킬 수도 있고 내가 상대를 변화시킬수도 있다. 이것은 상대를 파괴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서로가 미친 영향으로 서로가 현실을 견딜 수 있게 지탱하고 있을 수 있다. 인간관계는 두 그루의 나무가 서로 엉켜있듯이, 서로의 삶에 침투하여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고 서로를 지지하는 관계라는 것을 <당신의 나무>를 통해 알 수 있다.

 

사랑을 할 때는 위와 같은 현상을 더 강하게 느낄 수 있다. "1박 2일"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의 PD였던 유호진 씨는 <당신의 나무>의 메시지와 비슷한 주제로 글을 남겼다. 위 글이 인상 깊어 여기 남긴다. 궁금하신 분은 아래 글을 펼쳐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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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호진 PD님의 글

연애를 시작하면 한 여자의 취향과 지식, 그리고 많은 것이 함께 온다.
그녀가 좋아하는 식당과 먹어본 적 없는 이국적인 요리. 처음 듣는 유럽의 어느 여가수나 선댄스의 영화. 그런 걸 나는 알게 된다. 그녀는 달리기 거리를 재 주는 새로 나온 앱이나 히키코모리 고교생에 관한 만화책을 알려주기도 한다.

그녀는 화분을 기를지도 모르고, 간단한 요리를 뚝딱 만들어 먹는 재능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주 많은 나라를 여행해 보았거나 혹은 그녀의 아버지 때문에 의외로 송어를 낚는 법을 알고 있을 수도 있다. 대학때 롯데리아에서 잠시 아르바이트를 했었던 까닭에 프렌치후라이를 어떻게 튀기는지 알고 있을수도 있다,

그녀는 가족이 있다. 그녀의 직장에, 학교에는 내가 모르는 동료와 친구들이 있다. 나라면 만날 수 없었을, 혹은 애초 서로 관심이 없었을 사람들. 나는 그들의 근황과 인상, 이상한 점을 건너서 전해 듣거나, 이따금은 어색하나마 유쾌한 식사자리에서 만나게 되기도 한다. 나는 또 다른 종류의 사람들을 엿보게 된다.

그녀는 아픈 데가 있을 수도 있다. 재정적으로 문제가 있을수도 있다. 특정한 부분에 콤플렉스가 있을수도 있다.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부모님과 갈등을 겪고 있을수도 있다. 그건 내가 잘 모르는 형태의 고통이다. 그러나 그건 분명 심각한 방식으로 사람을 위협한다.

그녀의 믿음 속에서 삶이란 그냥 잠시 지속되었다가 사라지는 반딧불의 빛 같은 것일 수도, 혹은 신의 시험이자 선물일 수도 있다. 혹은 그런 고민을 할 여유가 없는 것이 삶 자체라고, 그녀는 피로에 지쳐 있을 수도 있다.

요컨대 한 여자는 한 남자에게 세상의 새로운 절반을 가져온다. 한 사람의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편협하기 때문에 세상의 아주 일부분 밖에는 볼 수 없다. 인간은 두 가지 종교적 신념을 동시에 믿거나, 일곱 가지 장르의 음악에 동시에 매혹될 수 없는 것이다.

친구와 동료도 세상의 다른 조각들을 건네주지만, 연인과 배우자가 가져오는 건 온전한 세계의 반쪽. 에 가깝다. 그건 너무 커다랗고 완결되어 있어서 완전하게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녀가 가져오는 세상 때문에 나는 조금 더 다양하고 조금 덜 편협한 인간이 된다.

실연은 그래서 그 세상 하나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연인이 사라진 마음의 풍경은 그래서 을씨년스럽지만 그래도 그 밀물이 남기고 거대한 빈 공간에는 조개껍질 같은 흔적들이 남는다. 나는 혼자 그 식당을 다시 찾아가 보기도 하고, 선댄스의 감독이 마침내 헐리웃에서 장편을 발표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기도 한다. 그런 것을 이따금 발견하고 주워 들여다보는 것은 다분히 실없지만, 아름다운 짓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그러한 실연이 없는 관계- 결혼 생활이 시작된다면 그 모든 절반의 세계는 점차 단단히 나의 세계로 스며들기 시작할 것이다. 그건 굉장히 이상하고 기묘한 일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 세계의 리스트에는 그녀가 가져온 좋은 것과 문제점 모두가 포함된다. 그건 혜택과 책임으로 복잡하게 얽힌 대차대조표라서 어차피 득실을 따지기가 어렵다.

세월이 감에 따라 그녀가 최초에 나에게 가져왔던 섬세한 풍경들의 윤곽, 디테일한 소품들은 생활이라는 것에 차차 -혹독히- 침식되겠지만, 그 기본적인 구성이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들은 여전히 나와 몹시 다르고, 다양해서- 이따금 경이로울 것이다.

한 사람이 오는 건 그 사람의 삶 전체가 오는 것, 이라는 말을 웬 광고판에서 본 적이 있다. 왜 아침에 그 문구가 생각났을까. 아무튼 사람을, 연인을 곁에 두기로 하는 것은 그래서, 무척이나 거대한 결심이다.

 

 


8. 바람이 분다

8-1 줄거리

프로그램 불법 복제를 통해 살고 있는 주인공은 자신의 일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해 구직 사이트를 둘러보았다. 구직사이트에서 보통의 이력서와는 전혀 다른 자기소개글을 보고 즉시 채용한다. 채용된 여자는 처음에는 출퇴근을 하다가, 어느 순간 퇴근을 하지 않고 주인공은 여자와 함께 생활하게 된다. 게임하고 밥 먹고 일하고 대화하다 보니 주인공은 여자를 점점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여자는 가까워진 주인공에게 불법복제 장비와 방을 정리하고 같이 세계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한다. 의욕이 없이 살던 주인공은 그 순간부터 프로그램 판매량을 늘리고 돈을 모으기 시작한다. 여행을 떠나기 얼마 안 남은 시점 복제일이 경찰에 발각되고 검거된다. 그 이후 여자는 자신의 가정으로 돌아가고 주인공은 여자가 세계여행을 위해 다시 찾아오긴 기다린다.

8-2 해석

<바람이 분다>는 "무슨 바람이 불어서 여행을 떠났대?"란 말처럼 삶에 찾아온 어떤 변화로 충동적인 행동하는 것을 그린 소설이다. 이 소설은 어떤 속 뜻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름 추측해보겠다.

 

주인공은 삶에 큰 애정 없이 적당히 살아간다. 인간관계에서도 염증을 느껴 사람을 멀리하고 책, 게임, 그림과 가까이 지낸다. 적당히 불법복제 일을 하며 변화 없는 잔잔한 삶을 살아간다. 그러다 여자를 고용하고 주인공의 삶에 파문이 일기 시작한다.

 

인간관계 미련을 두지 않는 주인공은 여자가 출근을 하지 않자 성질을 부리면서 자신에게 미리 연락이라도 달라고 화를 낸다. 또 적당히 돈을 벌고 경찰에게 걸리지 않는 것을 중시하던 모습과 달리 세계 여행을 떠나기 위해 무리하게 돈을 벌기 시작한다. 즉 주인공에게 어떤 바람이 불어서 삶에 변화가 찾아오고 있었다.

 

삶의 변화의 종착지는 <바람이 분다> 초반에 나온 헤밍웨이의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을 통해 미리 말해준다. <킬리만자로의 눈>에 나온 표범은 어떤 바람이 불어 킬리만자로 산의 정상에 올라 얼어 죽는다. 또한 표범에 비유된 바람둥이도 어떤 바람이 불어 하찮은 사고를 겪고 인생을 종 치게 된다. 즉 어떤 바람이 불어 한 행동으로 파멸적인 결과를 맞닥드린다. <바람의 분다>의 주인공도 똑같다. 여자를 만나 주인공 마음에 바람이 불어 무리한 행동을 하다 사소한 실수를 한다. 그 결과 경찰에 체포되고 재판을 받는다. 자신의 생계수단을 다 잃어버린다. 그리고 목표했던 세계여행도 못 가게 된다. 

 

결국 어떤 바람이 불어 행동한 사람은 모두 절망적인 상황에 직면한다. 김영하 작가님이 이 작품을 통해 충동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경계하라는 메시지를 남긴 건지, 단순히 흥미로운 이야기를 보여준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마음속에 어떤 충동이 들었을 때 차분히 상황을 관조하는 침착함과 상황을 분석하는 이성을 끌어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9.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9-1 줄거리

"잃어버린 소리를 찾아서"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제작한 한 남자는 "세계 폐허 기행 기획안"을 전달받는다. 이를 수용하고 남자는 세계의 폐허를 기행 한다. 처음 폼페이에 도달한 남성은 성교 중인 남녀를 발견하고, 몰래 숨어 그들을 지켜보며 자위를 한다. 사정 후 자신을 발견하는 어떤 눈동자를 발견한다. 폼페이를 떠나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으로 떠난다. 기찻길에서 폼페이에서 자신을 지켜보던 여자를 만나지만 불편한 남자는 여자를 내쫓는다. 그라나다에 있는 식당에서 그 여성을 다시 만난다. 전보다 편해져서 몇 마디 대화를 나눈다. 식사를 하고 알함브라 궁전에 오르는 길에 성매매를 하는데, 또 자신을 바라보는 그 여자를 만난다. 바로 밖으로 나가지만 만나지 못한다. 그라나다에서 다시 기차를 탄 후 여자를 만나는데, 그때 여자의 정체를 알게 된다. 그 여자는 5살 이전에 여장했던 자신이었다. 둘은 기차가 이동하는 동안 서로를 탐색한다. 그리고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그 여자와 헤어진다.

9-2 해석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은 자아성찰에 대해 말하는 소설이다.  메시지를 이해하기 위해선 정체불명의 샴고양이 눈을 가진 여자에 대해 알아야 한다.

 

주인공을 쫓아다니는 샴고양이 눈동자의 여성의 정체를 알 수 있는 장치들이 많이 있다. 우선 여자는 남자가 어디에 있든 접근할 수 있다. 또한 다음과 같은 아리송한 말을 한다.

저는 달이에요.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어요. 당신이 눈만 감으면 절 보지 않을 수 있는데 왜 저를 불편해하세요? - 281p

이 여자처럼 신출귀몰하고 원할 때만 볼 수 있는 존재는 실재할 수 없다. 이 여자의 정체는 소설에 등장하는 2가지 신화를 통해 더 뚜렷해진다. 첫 번째는 쿠스코의 거울 신화이다. 두 번째는 중국의 거울 신화이다.  두 신화 모두 거울 속에 비치는 상의 탄생 설화이다. 즉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여자는 거울 속의 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

 

여자는 거울의 상과 비슷한 특징을 많이 가지고 있다. 남자가 어디에 있든 함께 있고, 어떤 속도로 이동하든 같은 속도로 이동한다. 이는 남자와 동일한 존재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것은 실재할 수 없고, 허상 속인 거울 속의 상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또한 자신이 보고 싶을 때만 볼 수 있고, 눈을 감으면 보이지 않는다는 특징도 거울상의 특징과 일치한다. 그럼 거울 상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은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데, 그중 하나는 자신의 자아이다. 예부터 거울을 바라보면 자아성찰을 했다는 시나 거울 속의 자신과 대화했다는 시가 많다. 즉 거울의 상과 마주하는 행위는 자신의 자아를 마주하는 행위와 같은 것이다.

 

그럼 남자는 왜 자신의 자아, 즉 여자와 마주하게 된 것일까? 그것은 남자가 현재 삶에 의욕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남자는 "세계 폐허 기획안"은 제안받을 당시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라고 생각하며 직장을 그만둘 생각이었다. 남자는 자신의 삶이라는 여정 속에서 길을 잃고 의욕마저 잃어버린 상태이다. 소설 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는 왔던 길로 되짚어가면 된다"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즉 인생이란 여정에서 길을 잃은 남자는 왔던 길을 되짚어가야 했던 것이다.

 

인생의 길을 되짚어가는 것은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마주 보는 행위와 같다. 즉 자아성찰이다. 자신은 다른 누구보다 자신을 잘 알고 있다. 나의 기억, 나의 욕망, 나의 고민, 나의 고민에 대한 해답 등등 나에 관한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것을 알기 위해선 거울을 보듯 자신을 바라보아야 한다. 남자는 스페인에서 탄 기차에서 자아성찰을 하게 된다. 자아성찰의 과정은 굉장히 은유적으로 표현된다. 

그녀는 좀 더 가까이 다가온다. 두 사람은 서로를 안고 더 깊은 세계 속으로 들어간다....(중략)... 두 사람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새벽이 올 때 까지 그럴 것이다. - 286p

 언뜻 보면 성관계를 묘사하는 듯하지만 여자가 남자의 자아를 상징하는 존재이기에 기차에서 한 행위는 자신을 더욱 살펴보는 자아성찰을 하는 행위이다. 

 

자아성찰을 마치고 나서 이제 헤어질 시간이라고 한다. 남자는 자아성찰을 통해 자신을 알게 되었고 잃어버렸던 길에서 벗어날 실마리를 잡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 자아성찰을 그만두려 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자아를 달이라고 묘사한다. 달이 한 달 주기로 차오르고 스러지듯, 자아성찰의 필요성도 주기적으로 찾아온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결국 김영하 작가님은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이라는 소설을 통해 인생이라는 길을 잃어버렸을 때 자신을 되돌아보는 자아성찰을 하는 것은 어떠냐고 제시한다.

 

10 전체적인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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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얉아서 가볍게 읽기 좋다 생각했지만 다 읽는데 고생을 많이 했다. 사건만 따라가면 소설은 빠르고 손쉽게 읽히지만, 각 단편 소설은 어떤 메시지가 있는 듯한 느낌을 주어서 이를 해석하는데 고생을 많이 했다. 모든 소설이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고 해석에 정답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소설 속에 어떤 메세지가 있다고 느꼈기에 필자 나름대로 해석을 정리하고 싶었다. 나머지 단편들은 나름 만족할만한 해석을 했지만 <사진관 살인사건>은 해석의 방향을 아예 잘못잡은 것 같다. 글을 쓰면서도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에 휩싸여 고통스러웠다. 그래도 2021년의 필자의 해석을 기록하고 싶어서 공란으로 남겨놓진 않았다. 미래의 필자가 다시 읽고 좀 더 깔끔한 해석을 하기 기대한다.

 

소설집<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를 읽다가 삐삐라는 단어를 보기 전까지는 90년대에 작성된 소설인지 눈치채지 못하였다. 삐삐라는 단어를 보고 놀라서 소설이 적힌 년도를 찾아보았다. 모두 90년대에 쓰인 소설이었다. 문장의 호흡이 짧아서 그런지 옛날에 쓰인 소설이라는 느낌이 별로 없었다. 또 소설이 전개되는 방식이 사건중심으로 흘러가서 쉴틈없이 이야기가 전개되는 느낌이다. 그래서 현대에 쓰인 소설을 빠른 호흡으로 읽는 느낌이 들었다.

 

문장이 짧고 빠른 호흡이란 것과 달리 소설에 등장하는 단어에는 어떤 비유가 계속해서 나왔다. 글은 빠른 호흡이지만 비유를 이해하기 위해선 속도를 늦춰야 했다. 뭔가 아이러니를 접한 느낌이여서 즐거웠다.

 

이 소설집을 읽으면서 성적인 묘사가 많이 나오는 소설을 별로 안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사실 안 좋아하는 건지도 아직 잘 모르겠다... 단지 별로 재밌지가 않았다. 

 

그래도 소설 속에 비유가 많고 해석할 여지가 많은 작품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답답한데 하나하나 밝혀내는 듯한 느낌은 성취감과 비슷했다. 다른 김영하 작가님의 소설도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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