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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e's 공부/서울대 명품 강의

[서평] 환원주의 시각을 버리고 복잡계의 시각을 취하라《서울대명품강의1》- 최무영 교수님

by 박꿀벌 2021.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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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서울대 명품강의1 - 우리 삶과 사회를 새롭게 이해하는 석학강좌

💚저자 : 최무영 외 18인(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기획) 💚출판사 : 글항아리
💚출간일 : 2010.12.29 (1판 3쇄) 💚구매 여부 : 알라딘 구매
💚읽은 날짜 : 21.08.16 💚총평 : ★★★★★☆☆☆☆☆



 

내용 정리

1. 과학, 불가능성과 불능에서 진보로 가는 길 - 복잡계 현상으로서의 생명과 과학의 양면성

1-1. 내용 - 환원주의 시각을 버리고 복잡성의 관점을 취하라.

(1) 과거에 비해 현대로 넘어오면서 과학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 과학의 발전은 문명의 발전에 영향을 주었기에 현대인은 과학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과학을 분류하면 크게 물리과학과 생명과학, 지구과학으로 나눌 수 있다. 최근 물리과학은 기본 입자를 찾아내고 상호작용을 연구하는데 굉장히 성공적이었다. 그로인해 기본 입자를 이해하면 전체를 이해할 수있다는 환원주의 시각이 나타났는데, 인식론 측면에서는 환원주의를 인정할 수 없다.

 

대표적으로 생명과학을 살펴본다. 생명은 유전자로 시작된 세포의 구성으로 조직되어있다. 환원주의 시각에 따르면 생명의 기본 단위인 유전자를 모두 밝히면 생명 자체와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데, 이는 잘못되었다. 생명체는 유전자로 조직된 신체도 중요하지만 환경과 상호작용을 하며 어떤 선택을 하는지가 중요하다. 즉, 유전자는 최초의 기여자를 할 뿐 모든 것을 결정하는 독재자가 될 수 없다. 생명에게 중요한 것은 각 세포가 짜여있는 방식과 협동하는 방식, 그리고 신체가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이 중요하다. 이는 생명이란 복잡계로서 환원주의 시각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2) 과거의 수공예적 기술과 달리 현대 기술은 모두 과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리고 현대사회는 기술적 산물들로 인해 시름을 앓고 있다. 핵전쟁, 환경오염, 자원고갈 등등의 문제가 있다. 대표적으로 환경문제 중 지구 온난화는 일정 임계점을 지난 후에 양의 되먹임 현상이 일어나 기온이 스스로 상승하게 된다. 이는 환경인 생태계가 복잡계라는 방증이다. 생명계에서 살펴봤듯이 복잡계는 환원주의로 설명될 수 없다.

 

(3) 과학은 세분화되어 각각의 전문영역에서 발전하고 있다. 전문분야의 지식이 정립되면 세상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각 과학 분야의 지식이 종합되지 못한 채 전체적인 차원에서 답을 내놓지 못한다. 더욱이 다른 전문 분야에서 답이 밝혀지지 않아 불확실한 문제는 위험성이 없다고 판단하기도 한다. 이는 현대 과학의 본질적인 무능력 때문인다. 즉, 현대 과학은 환원주의 입장에서 전개되며 복잡계의 관점에서 처리되지 않는 한계를 지녔다

 

(4) 좌측, 모리츠 에셔의 <손을 그리는 손>을 보자. 부분을 보면 손이 그림을 그리고 있어서 문제가 없어보인다. 하지만 전체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그림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순환적인 모순이 보인다. 모리츠에셔의 작품은 논리학의 "결합의 오류"를 표현하는 작품이 많다. 부분의 특징이 전체의 특징을 결정짓지 못한다는 내용이다. 즉 과학도 똑같다. 환원주의 시각이 전체를 설명한다고 보장할 수 없다. 우리는 과학을 비롯한 사회를 바라볼 때 복잡계의 원칙에 따라 세상을 바라봐야한다. 복잡계에선 각 구성원이 짜여있는 방식이 중요한데 이것이 복잡계의 정보(information)를 나타낸다.

 

 

1-2. 감상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복잡계와 관련된 철학서를 한 권 읽은 적이 있다. 그 당시에 들었던 생각은 "다 맞는 말이긴 한데 이게 가능할까?"였다. 각 부분들의 요소를 종합하여 전체를 포괄하는 사고를 하는 것이 올바른 해답을 찾아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인간의 인지 능력에는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동시에 수많은 정보를 떠올리며 사고하기 힘들다. 더욱이 현대과학은 각 분야의 내용이 세분화 되어 있어서 하나의 전공을 다 이해하는데만 수년이 걸리기도 한다. 즉 생명 존속 기간의 한계나 인지적 한계 때문에 복잡계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복잡계를 포기하기에는 매력적인 이론이다. "부분은 전체를 설명할 수 없다."라는 말은 과학뿐만 아니라 어디서든 적용된다. 그러니 불가능 하다고 복잡계를 포기하기 보다는 최대한 실현해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현재 발달 중인 인공지능이 점점 고도화 되면 복잡계의 시각에서 수많은 정보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기원 전 사회에서 지구 밖의 세상을 상상하며 수많은 신화를 만들었지만 망원경이 발명된 후 모두 거짓임이 밝혀진 것 처럼 현재 복잡계를 통해 세상을 해석하며 내놓는 대답들도 모두 거짓으로 밝혀질 수도 있다. 이것은 복잡계가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고능력을 보조할 수 있는 기술이 부재한 시기에 출현한 너무 때이른 이론이었을 뿐이다. 인공지능이나 아니면 다른 기술을 통해서든 복잡계가 실현될 때 우리 과학은 혁명적인 변화를 맞지 않을지 모른다는 기대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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