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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e's 책리뷰/장편소설

진정한 공감이 필요하다《아몬드》책리뷰

by 박꿀벌 2021.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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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책표지

스스로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라고 자부하는 사람조차 감정을 많이 느낀다. 감성적인 사람은 더 강하고 자주 여러 감정을 느낀다. 우리의 삶은 생각 이상으로 감정에 의해 지배된다. 한여름날 더운 것이 불쾌하고 싫다는 것도 감정이 유발한 가치판단이다. 한여름, 에어컨으로 시원해진 방에서 뒹굴거리다 밖에 잠시 나가는 것을 상상해보자.

 

살짝 쌀쌀한 방에서 따뜻한 밖으로 나오니 온화한 공기가 나를 감싸는 것 같아 기분이 포근하다. 하지만 이내 곧 뜨거워지는 몸은 열을 방출하려고 모공을 열기 시작한다. 두피부터 시작해 몸이 근질근질해진다. 뙤약볕에 조금 더 걸으면 몸에 땀이 흘러 옷이 축축해진다. 티셔츠가 몸에 달라붙어 팔을 움직일 때마다 옷이 당겨진다. 그늘을 발견하고 잠시 땀을 식힌다. 땀이 증발한 피부는 끈적인다. 

 

최대한 감정이 가미된 표현은 자제하고 더운 여름날 우리가 겪는 현상을 묘사해보았다. 상상만 해도 불쾌하고 찝찝하지 않은가? 하지만 저 문단 속에 불쾌함을 표현하는 단어는 없다. 근질근질하다, 끈적이다. 축축하다 같은 단어에 불쾌함이 포함된 것처럼 생각되는 이유는 우리가 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포근하다는 단어에서 긍정적인 느낌이 드는 것도 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감정이 없는 사람과 감정이 있는 사람은 똑같은 단어를 사용해도 담고 있는 의미가 다르다. 감정이 없는 것을 상상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손원평 작가님은 감정없는 주인공의 삶과 생각을 소설 <아몬드>에 묘사하였다. 손원평 작가님이 그린 줄거리를 따라가 보자.

 

(※ 스포일러가 있으니 원치 않는 분은 페이지를 나가주시길 바랍니다.)

 

목차

1 줄거리

2 아몬드의 의미

3 책에서 던지는 메시지

 3-1 남들과 다름

 3-2 특이한 개인이 받는 사회의 시선

 3-3 무지로 발생하는 부정적인 시선

 3-4 겉도는 관심과 무관심

 3-5 진정한 공감

4 소감 및 또 다른 감삼

5 기억에 남는 문장

6 엄마와 할멈의 인생교육

 

 

1 줄거리

도입
선윤재(주인공)는 선천적으로 편도체가 작은 상태로 태어나서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기쁨, 슬픔, 분노를 비롯하여 공포나 두려움조차 느끼지 못한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여 분위기를 잘 읽지 못하고 상대의 행동에 적절한 반응을 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학교에서 주목받고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못하였다. 윤재의 엄마는 아들이 평범하게 사회생활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감정, 표정, 적절한 반응들을 주입식으로 교육한다. 엄마의 노력으로 윤재는 점점 학교 생활에 익숙해져 간다. 

이야기는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선윤재의 출생부터 가족을 잃기 전까지, 2부는 혼자가 된 윤재가 곤이를 만나고 친해지는 이야기, 3부는 도라와 친해지고 연애하는 이야기, 4부는 가출한 곤이를 찾으러 가는 이야기이다.

 

<아몬드>는 기본적인 줄거리 이외에 또 하나의 스토리가 진행된다. 윤재의 감정 변화에 대한 스토리이다. 1부에서 윤재는 감정이 없다. 감정이 무엇인지도 모른 체 오감으로 수집한 객관적인 정보만을 인지한다. 학교폭력으로 죽어가는 아이를 보고 동요하지 않고, 눈앞에서 넘어져 울고 있는 여자아이를 보고도 응시할 뿐 어떤 느낌도 받지 못한다. 윤재의 질병을 알게 된 엄마의 갖은 노력으로, 적절히 '고마워', '미안해'등의 말을 할 수 있게 되고, 적절한 타이밍에 웃는 법도 배우지만, 연기를 하는 것일 뿐이다. 엄마가 망치에 얻어맞고 할멈이 칼에 찔려 피가 쏟구치는 순간조차 윤재는 아무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1부까지 윤재는 엄마와 할멈 이외에 다른 사람과 유대를 형성하지 못한다. 친한 친구도 없고 자주 만나는 사람도 없었다. 살인사건으로 가족마저 사라져서 혼자가 된 윤재는 완전히 외톨이가 되었다. 이전까지 엄마는 윤재가 감정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몬드를 매 끼니 챙겨주고, 여러 가지 교육을 하였었지만, 엄마가 사라진 지금은 윤재에게 감정을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이용하여 악질적인 자극을 주는 동급생만 있다. 그러다 곤이라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곤이는 윤재가 고통스러워하고 괴로워하길 바라는 것이지만, 윤재가 감정을 느끼길 바라며 자극하는 첫 인물이다.

 

윤재의 병을 알게 된 후 쓸데없는데 힘을 썼다는 것을 깨달은 곤이 윤재를 자극하는 일이 없어지고 친해지기 위해 헌책방에 자주 들른다. 자주 만나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곤이는 윤재는 친구라고 생각하게 된다. 곤이는 윤재가 감정을 느끼길 바라며 '공감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나비를 찢어 죽인다. 이 행동이 감정을 촉발하진 못하지만 윤재의 생각에 큰 변화가 생긴다.

 

윤재는 타인에게 관심이 별로 없었다. 처음으로 타인에게 관심을 가진 것이 곤이였는데, 그 동기도 유명한 살인자와 비슷한 건 '애착을 형성하지 못한 폭력적인 곤이'인지 아니면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자신'인지 궁금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윤재가 어떠한 감정을 느끼길 바라며 나비를 찢는 곤이의 자극은 "나는 평생 감정을 못 느끼는 건가?"와 같은 자신의 상태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더불어 "감정을 느끼면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거리가 좀 많아질 텐데"와 같이 타인과 소통하고 싶은 생각을 촉발했다. 윤재에게 큰 변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3부에서는 '도라'라는 여학생이 등장한다. 도라는 곤이와 달리 윤재에게 어떤 감정을 요구하지 않는다. 하지만 약간의 변화가 생긴 윤재에게 새로운 자극을 불러일으킨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 나뭇잎이 흩날리던 오후에 도라와 우연히 만난다. 바람에 실려오는 도라의 향을 맡고 바람에 날린 머리카락에 부딪히는 순간, 윤재는 가슴에 돌덩이가 내려앉은 기분을 느낀다. 이후 도라를 만날수록 사랑과 관련된 감정을 느끼지만 이 낯설고 불편한 느낌을 귀찮아한다. 

 

감정이 생긴 윤재는 곤이에게서도 어떤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곤이가 학교에서 문제 행동을 일으킬 때마다 가슴에 돌덩이가 가라앉는 느낌을 받는다. 이것은 윤재가 느끼는 감정의 폭이 점차 넓어짐을 의미한다. 이야기 마지막에 윤재는 가출한 곤이를 찾으러 나섰다가 철사를 만나게 된다. 철사는 곤이를 조롱하며 윤재를 때리고 칼로 찌르기까지 한다. 정신이 꺼져가며 문득문득 보이는 곤이의 오열하는 모습을 보며 가슴에서 둑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윤재는 이 느낌은 구역질이 나고 역겹지만 멋진 경험이라고 묘사했다. 

 

몇 개월 후 정신을 차린 윤재는 엄마와 재회하고 눈물을 흘린다. 윤재는 더 이상 감정 표현 불능증이 아니다. 약하지만 모든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중간에 <데미안>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윤재가 감정을 느끼며 성장하는 과정이 <데미안>에서 나오는 구절과 딱 맞는 거 같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트려야 한다."윤재는 하나의 세계를 깨트리고 나왔다.

 

 

2 아몬드의 의미

아몬드의 의미는 책의 초반에 나온다. 아몬드는 윤재의 질병과 엄마의 희망을 상징하는 단어이다. 사람은 뇌에 아몬드를 닮은 편도체를 가지고 있다. 편도체는 감정을 느끼는데 도와주는 뇌의 부분으로 편도체의 크기가 작으면 감정을 보통사람보다 잘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윤재가 앓고 있는 감정 표현 불능증도 아몬드의 크기가 작기 때문에 발생한다. 아몬드는 윤재의 질병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단어이다. 

 

힘이 센 장어를 먹으면 정력이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뇌를 닮은 호두를 먹으면 머리가 좋아질 것이라고 믿는 것처럼 윤재의 엄마도 아몬드를 먹으면 아몬드와 닮은 편도체가 커질 거라고 믿었다. 아몬드는 윤재가 감정을 느끼기 바라는 엄마의 소망을 상징하는 단어이다.

 

 

3 책에서 던지는 메시지

3-1 남들과 다름

<아몬드>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남들과 다르다'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윤재는 대부분의 사람과 달리 감정을 아예 느끼지 못한다. 할멈도 감정을 느끼지 않는 윤재를 보고 보통과 다르다는 의미로 괴물이라고 부른다.  곤이도 어릴 때 미아가 되어 길거리를 방황하다 보호시설에서 지내게 된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강해야 살아날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곤이는 폭력과 위압으로 상대를 기선제압한다. 말을 하기 전에 목을 꺾고, 혀로 볼을 찌르고 침을 뱉는 행동은 곤이의 생존전략인데,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남들과 다른 특징이다.

 

3-2 특이한 개인이 받는 사회의 시선

남들과 다른 특징을 가진 사람은 주목을 받는다. 하지만 그 시선이 썩 유쾌하진 않다. 작가는 윤재가 받는 이와 같은 시선을 <B사감의 러브레터>를 통해 보여주고 싶어 한 것 같다. <B사감의 러브레터>에 나오는 여학생의 반응은 조소, 공포, 동정이다. 

 

나와 다르거나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을 보면 호기심이 먼저 생긴다. 호기심으로 상대를 알아갈수록 사람들의 반응은 몇 가지로 나뉜다. 우선 상대가 자신보다 강자인지 아닌지에 따라 나뉜다. 여기서 말하는 강자와 약자는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예를 들어 힘이 약한 어린아이는 신체적으로 약자지만, 어린아이가 총을 들고 있는 상황에선 우리가 약자이다. 

 

먼저 상대가 강자라고 생각을 해보자. 강자가 나를 어떤 형태로도 해할 수 있다면 보통 공포나 두려움을 느낀다. 물리적인 폭력이나 사회적인 차별 어떤 것도 상관없다. 나를 해할 능력이 있고 실제로 위해를 가할 가능성이 있는 존재는 공포의 대상이다. 작중에서 곤이는 침을 뱉고, 책가방을 던지는 등 폭력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동급생 입장에선 곤이가 자신을 위협할 수 있는 공포의 대상이다. 윤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크리스마스이브 살인사건이 학교에 알려진 이후 윤재를 구경 온 학생 중에 공포를 느낀 사람이 있다.

 

만약 강한 자가 나를 해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동경하게 된다. 곤이에게 철사는 나를 해하지 않으면서 이 세상을 멋지게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가출을 해서 철사를 찾아간 것도 동경심이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할 수 있다. 

 

강자가 아닌 존재가 남들과 다를 경우 조소나 동정을 보낸다. 어떤 사람이 남들과 다르고 눈에 띄지만 별 거 없어 보이면 조소한다. 윤재가 초등학교에서 동급생들에게 당하는 조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동정은 차별대우를 받거나 난처한 상황에 처한 것을 보면 떠오르는 감정이다. 또한 힘들어하는 사람을 보면 동정해야 한다고 학습된 사람도 마찬가지로 동정을 느낀다.

눈에 띄는 사람에게 느끼는 감정
강한 자  -> 공포, 동경
안전 or 약자 -> 조소, 동정

위에서 제시한 공포, 조소, 동정은 부정적인 감정이다. 하지만 몇몇 경우에는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철저히 무관심할 때다.

3-3 무지로 발생하는 부정적인 시선

위에서 말하는 강자 약자에 대한 기준이나, 나를 해할 수 있다는 것은 모두 주관적인 판단과 감정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그 판단에는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많은 영향을 끼친다. 윤재와 곤이는 매우 상반된 시선을 받는다. 윤재는 보통 조롱과 동정의 시선, 곤이는 보통 두려움의 시선을 받는다. 그것은 윤재의 질병이 알려져 있고 윤재가 해를 가할 가능성이 적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필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윤재와 만났다고 상상을 해보았다. 17살인 윤재는 엄마에게 교육을 받아서 상황에 따른 적절한 반응을 하지만 만약 엄마에게 교육받은 대로 행동하지 않고 어린 6살의 윤재처럼 행동한다고 상상해보자. 내가 길을 가다 넘어져서 심하게 다쳐서 말을 못 하는 상태이다. 지나가던 윤재가 멈춰 서서 가만히 나를 바라본다. 바라본다. 계속 바라본다. 표정에 변화가 없다. 그저 바라본다. 어떤 감정이 드는가? 솔직히 필자는 공포가 생길 거 같다. 내가 부상으로 죽을지도 모르는 공포도 있겠지만 윤재에 대한 공포가 생길 거 같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수많은 경험을 한다. 그렇게 상황마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반응을 알게 된다.  이 관념 때문인지 사람이 마땅히 보여야 할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필자는 좀 무섭다. 윤재와 함께 다니는데 웃어야 될 상황에도, 울어야 할 상황에도, 화내야 할 상황에도 항상 무표정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생각해봐도 무섭다. 이 사실 공포를 잘 설명하진 못하겠다 그런 그럼 감정이 든다. 

 

하지만 윤재의 병을 알고 나면 상황이 급변한다. 윤재는 단순히 감정을 못 느끼기 때문에 표정 변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공포는 전혀 느끼지 않을 거 같다. 하지만 여전히 공포를 느끼는 사람이 있을 거 같다. 한때 유행한 사이코패스 살인마 괴담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것은 윤재에 대해 더 알아보지 않고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사이코패스 살인마라고 엮어서 하나의 범주로 여기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게다가 감정을 덜 느끼는 많은 사람들이 살인과 무관하게 정상적으로 살아간다.)) 윤재를 제대로 알수록, 잘못된 배경지식을 수정할수록 공포를 느끼는 일은 없을 것이다

 

곤이의 경우도 비슷하다. 곤이는 폭력적인 행동을 일삼는다. 사람들은 그런 곤이를 머릿속에서 분류한다. 질 나쁜 애라고. 이런 생각이 대표적으로 드러난 곳은 수학여행의 절도사건이다. 곤이는 알리바이도 있고 스스로 결백하다고 주장했지만 사람들은 곤이가 훔쳤다고 생각하고 비난한다. 곤이는 행동이 폭력적일 뿐이지 도둑질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 곤이는 폭력적일 뿐이지 범죄자가 아니다. 곤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감정이 풍부하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센척을 하는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곤이를 질나쁜애라고 생각한다. 곤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곤이에 대한 무지 때문인 거 같다.

 

우선 곤이와 대화해서 잘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동급생들은 폭력이 무섭기 때문일 수 있다. 사실 폭력적인 모습을 보여준 곤이의 잘못이 있으니 이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상대를 함부로 재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함부로 재단하는 이유는 무지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강력 범죄와 얽히는 일이 없다. 그래서 상대를 잘 모르고 상상한다. 그리고 머리 속에 있는 수많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어버린다. 폭력, 절도 등등을 묶어버리고 하나라도 해당하면 "쟤 그런 사람이네"라는 식으로 재단해버린다. 즉 무지하기 때문에 상상하고 부정적으로 재단한다. 사실 이런 재단은 혐오의 일종이다. 무지는 혐오를 발생시킨다.

 

책의 내용으로만 서술했지만 현실에서도 무지로 인한 배타적 행동이 만연하다. 낯선 종교, 이민자 등등 예시는 셀 수도 없이 많다. 

 

3-4 겉도는 관심과 무관심

무지로 인해 공포나 두려움 그리고 혐오가 생긴다면 무지를 해소하기 위해 상대에 대해 관심을 보여야 한다. 관심이라는 단어는 주의가 끌려서 하는 여럿 행동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것들을 정말 관심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아몬드>에 나온 사례를 보겠다.

 

윤재의 동급생 중 하나는 좌중의 분위기를 바꾸는 것을 즐긴다. 윤재의 가족이 크리스마스이브 때 참상을 당한 것을 알자, 그때 기분이 어떠했냐면서 물어본다. 같은 반 학생들도 대답이 궁금하여 숨을 죽이면 윤재의 말을 기다린다. 이런 것들이 관심이라고 할 수 있을까? 또한 윤재의 고등학교 담임은 윤재를 위로해준답시고 종례시간에 윤재를 일으켜 세워 격려의 박수를 유도한다. 이제 과연 관심의 표현일까? 윤재의 말 그대로 신경 꺼주는 것보다 못하다.

 

이번에 현실의 사례를 생각해보자. 설날이나 추석 때 친척을 만나러 가면 으레 요즘 근황을 묻는다. 근황이 좋으면 축하해주고 근황의 내용이 좋지 않으면 위로와 조언을 해준다. 이 조언이 진심으로 들린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궁금하다. 걱정된다는 이유로 관심을 가져주니까 이런 조언도 해준다는 말로 무례한 말을 내뱉는다.

 

필자는 이런 것을 관심의 표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신경조차 쓰지 않는 무관심은 아니지만 나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려는 생각도 없는 관심이기에 '겉도는 관심' 또는 '소극적인 무관심'이라고 부르고 싶다. 우리의 삶은 겉도는 관심으로 가득 차 있다. 겉도는 관심은 타인을 이해하고자 하지 않는다. 겉도는 관심은 단순한 호기심을 채우거나 가십을 위해 떠올랐다가 가라앉는다. 이런 자기중심적인 겉도는 관심은 관심의 대상은 상처 입힌다.

 

겉도는 관심이 무관심에 가깝다는 것은 윤재의 사색을 통해 말해준다. 크리스마스이브의 살인자는 열흘 동안 뉴스에서 화제가 되다가 시들해졌다. 심박사는 전쟁으로 고통받는 아이를 진지하게 바라보다 윤재가 다가오자 다친 아이를 본 적 없다는 듯 웃는다. 이런 현상을 보고 윤재는 "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척을 하며, 행동하지 않고 공감해도 쉽게 잊느냐"고 물으면서 이런 건 진짜가 아니라고 한다. 

 

윤재와 곤이가 느끼는 부정적인 시선도, 일상에 만연하는 혐오를 해결하는 것은 무지의 해소가 동반되어야 한다. 그러나 무지를 해소시키는 것은 겉도는 관심이 아니다. 윤재가 말하는 "진짜"가 되어야 한다. 필자는 그것이 진정한 공감이라고 생각한다.

 

 

3-5 진정한 공감

부정확한 자신의 세계관으로 상대를 재단하는 것이나 흥미위주의 겉도는 관심은 진정한 관심이 아니다. 진정한 관심은 진정으로 상대의 입장에서 그 사람의 처지를 깊이 생각하고, 상대를 위하는 행동을 할 줄 아는 것이다.  상대의 처지에서 생각하려고 노력하면 상대에 대한 무지는 사라진다.

 

<아몬드>에는 두 명의 살인자가 나온다. 크리스마스의 살인자와 PJ놀란이다. 이 두 사람은 진정한 공감을 촉구하는 것 같은 등장인물이다.

 

크리스마스의 살인자는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소시민이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워 세상에 대한 분노를 가지고 살인을 저지른다. 윤재는 가족을 잃은 이후 왜 더 늦기 전에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을까 의문을 품는다.

 

매우 불우한 어린 시절이 세상에 대한 분노를 만들어 PJ 놀란은 끔찍한 범죄자가 되었다. 이 범죄는 PJ놀란이 어렸을 때 부모와 주변의 노력이 있었다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범죄자가 불우한 어린 시절을 겪었다고 죄가 경감되는 것도 아니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겪는 모든 사람이 범죄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불우한 어린 시절이 버티기 힘든 스트레스를 줘서 세상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을 진정한 관심은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PJ놀란은 세상이 자신에게 손을 내밀기는 끊임없이 기다렸을 수도 있다.

구할 수 없는 인간이란 없다. 구하려는 노력을 그만두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 <아몬드>113p

 

두 살인자 모두 자신의 처지를 진정으로 생각하고 이해하는 사람이 필요했다.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절망적인 상황에서 꺼내 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모두 진정한 공감이 필요했다. 진정한 공감이 있었다면 두 살인마도 없었을 것이고, 수업시간에 윤재를 일으켜 세우는 선생도 없었을 것이고, 자신을 뽐내려는 무례한 학생도 없었을 것이다. 명절마다 무례한 질문을 일삼는 친척도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진정한 공감이 부족하다. 

 

사실 필자가 말하는 진정한 공감은 많은 체력을 요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이 사회에 진정한 공감을 요구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윤재처럼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처럼 극단적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모두 남들과 다르다. <아몬드>의 할멈은 평범하다는 것은 가장 이루기 어려운 가치라고 한다. 또한 <평균의 종말>이라는 책에서는 평균적인 인간이란 없다고 말한다. 나와 완전히 똑같은 도플갱어는 없다. 어딘가 모두 다르다. 서로 다른 사람이 모여사는 사회에서 진정한 공감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두 서로의 관객일 뿐이다. 겉도는 무관심을 던지는 관객이다.

 

만약 진정한 공감을 할 여유가 없다면 최소한 심 박사의 말을 떠올려보자.

"난 누군가를 쉽게 재단하는 걸 경계한단다. 사람은 다 다르니까" - <아몬드> 116p

 

4 소감 및 또 다른 감상

<아몬드>를 정말 재밌게 읽긴 했지만 사실 소설 초반에 중도 하차를 할 뻔했다. 초입부에서 윤재 입장에서 서술하는 작품인 것치곤 감성적이거나 비유적인 표현이 너무 많다는 것이나 감정을 가진 것 같은 표현이 몰입을 깨트렸다. 예를 들어 맥도날드에서 엄마와 할멈이 7년 만에 만났을 때 할멈의 팔짱을 '빗장을 잠그듯'이라고 표현한 것이나, 아몬드의 맛을 '캘리포니아의 햇살'이라고 표현한 것은 감정이 동반된 비유이다. 표현이 이쁘긴 하지만 어색하다고 느꼈었다. 책의 분량이 400p를 넘어갔으면 그만 읽었겠지만 소설의 분량이 200p 정도로 짧아서 참고 읽었었다. 읽다 보니 윤재의 풍부한 표현력은 엄마의 영향으로 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이고, 나중에 감정을 느끼게 되었기에 감성적인 표현이 많이 나왔던 것을 알게 되었다. 책을 다 읽고서 필자의 성급한 판단을 반성하게 되었다. <아몬드>에서 나오는 것처럼 쉽게 재단해선 안되는데 몇 가지 문장으로 오해를 했었다.

 

<아몬드> 리뷰를 티스토리에 작성하기 전에 어떤 주제로 서술할지 고민을 했다. 이 게시물은 "윤재의 감정 변화"와 "진정한 공감" 두 가지의 주제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다른 관점으로 리뷰를 작성해도 재밌을 거 같다.

 

작중 윤재와 곤이는 단둘이 있을 때 서로에게 꾸밈이 없다. 또한 곤이와 윤재가 가지는 두려움과 고통에 대한 관점 차이는 두 친구의 대립점을 그려내고, 곤이의 '운명과 시간'이란 말은 변화의 가능성을 함축한다. 이런 점을 토대로 우정을 통해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병을 극복하는 청소년 성장소설 같은 분위기로 이야기를 진행할 수 도 있을 거 같다.

 

곤이를 중심으로 책을 정리해봐도 좋을 거 같다. 곤이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항상 세상과 싸우는 인물이다. 거친 방식으로 세상을 대하지만 윤재를 만나고 변할 뻔한다. 하지만 도둑 사건을 기점으로 남들이 규정한 대로 살기로 다짐한다. 이후에 철사의 폭행으로 다시 제대로 사는 것을 선택한다. 곤이를 통해서는 한 사람의 정체성이 형성되는데 주변 환경이나 사회의 시선이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이를 통해 범죄자에게 가하는 낙인 효과를 고민해봐도 좋을 거 같다.

 

아니면 마지막 작가의 말처럼 "가능성이 열려있는 아이에게 손을 내밀어주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정리해도 좋을 거 같다. 필자는 다른 주제로 게시글을 썼지만 사실 이것이 작가의 의도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윤재는 감정을 못 느끼다 곤이와 도라의 영향으로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 토대는 엄마와 할멈의 꾸준한 교육과 사랑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어릴 때 애착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곤이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만 아버지가 외면한다. 아버지가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다가갔으면 더 좋은 결과가 있었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보내는 관심에 따라 곤이가 윤재처럼, 윤재가 PJ 놀란처럼 자랐을 수도 있다. 도라, PJ 놀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도 재밌었지만 책에 대한 묘사를 보는 것도 즐거웠다. 작가는 책을 가까이 두는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책과 관련된 묘사가 생생하다. <아몬드>에서도 "엄마는 작가를 지망했지만 자신의 삶을 팔 자신이 없어 타인의 글을 파는 헌책방을 하기로 한다"는 서술과 "윤재가 헌 책의 퀴퀴한 냄새를 들이마시며 편안하다"는 묘사도 손원평 작가님이 언젠가 했던 생각을 듣는 거 같았다.

 

이 책을 읽으며 아쉬운 것이 하나 있다. 책에서 다른 작품이 인용하면 뭔가를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아몬드>에는 <데미안>, <호밀밭의 파수꾼> 같은 작품이 나오는데 모두 읽어보지 못한 작품이다. 이 작품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놓친 것 같아 아쉽다.

 

5 기억에 남는 문장

 아그작 소리와 함꼐 멀고 먼 캘리포니아에서부터 날아든 햇빛이 입 안으로 퍼져 나간다. - <아몬드>26p
할멈은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결혼을 허락할 수 없다고 했지만, 사랑은 누가 허락하거나 허락하지 않는 결재 서류가 아니라고 엄마는 받아쳤다. - <아몬드> 39p
뭐든 여러 번 반복하면 의미가 없어지는 거야. 처음엔 발전하는 것처럼 보이고 조금 더 지난 뒤엔 변하거나 퇴색되는 것처럼 보이지. 그러다 결국 의미가 사라져 버린단다. 하얗게. - <아몬드>47p
나는 '썩을 년'이라는 할멈의 입버릇에 기분 나빠하는 엄마를 위해 '썩지 않는 여자'라는 별명을 붙여 줬다. - <아몬드>48p
이제 엄마에게 남은 건 늙는 일밖에 없단다. - <아몬드>49p
때로는 맛보다 분위기가 식욕을 돋게 하나 보다. - <아몬드>53p
나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생각할 시간을 달라는 건 사실 그 시간에 정말로 생각하겠다는 건 아니다. 그저 시간을 달라는 뜻이다. - <아몬드>63p
예감은 사실 매우 인과적인 데이터다 - <아몬드>84p
듣던대로 넌 참, 명료하구나 - <아몬드>85p
사람들은 남 얘기를 할 때 자기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자주 잊어버린다. 말하는 사람은 작게 말한다고 생각해도, 그 말들은 대부분 여과 없이 다른 사람의 귀로 들어간다. 
어려운 건 겨울이 봄으로 바뀌는 것이다. 언 땅이 녹고 움이 트고 죽어 있는 가지마다 총천역색 꽃이 피어나는 것. 힘겨운 건 그런 거다. 여름은 그저 봄의 동력을 받아 앞으로 몇 걸음 옮기기만 하면 온다. 그래서 나는 5월이 한 해 중 가장 나태한 달이라고 생각했다. 한 것에 비해 너무 값지다고 평가받는 달 - <아몬드>135,136p
한 가지 질문에도 백 가지 다른 답이 있는 게 이 세상이란다.

 

6 할멈과 엄마의 인생교육

튀지 말아야 돼. 그것만 해도 본전이야. 그 말은 들키지 말라는 뜻이었다. 남들과 다르다는 걸. 그걸 들키면 튀는 거고 튀는 순간 표적이 된다. -<아몬드> 32p
고마워와 미안해는 습관처럼 입에 달고 산다. - <아몬드>36p
너무 솔직하게 말하면 상대에게 상처를 준다. - <아몬드>37p
누군가 예사롭지 않은 제안을 하면 일단 시간부터 끌어라 - <아몬드>73p
집단생활에는 늘 희생양이 필요하다 - <아몬드>80p
딱히 해가 되지 않는다면 도와주는 편이 좋다. - <아몬드>8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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