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ee's 책정리/인문

[서평]혼자 행복한 사람은 없다《행복의 기원》

by 박꿀벌 2021. 11. 2.
반응형

 

행복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할까?

 

무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면 그것이 결핍된 상황인 경우가 많다. 행복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할 때 행복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 필자도 마찬가지였다. 인생이 어딘가 막힌듯 풀리지 않던 시절에 '행복하고 싶다, 행복하기 위해선 무엇을 갖춰야할까?, 무엇을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와 같은 생각을 종종 떠올렸다. 

 

보통 행복하기 위해서 행복의 조건을 찾아나서지 행복이 무엇이고 왜 존재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다른 것도 비슷하다. 어떤 것을 실현하기 위해 대상의 정의나 진리를 진지하게 고찰하기 보다는 실현할 방법을 강구하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은 행복이 왜 존재하는지에서부터 질문을 던진다. 그에 대한 답을 알게된 순간 행복의 방법론도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저자는 행복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인간이 진화론에 의해 변화해온 동물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모든 특성은 진화의 산물이고 행복감도 예외는 아니라고. 인간은 생존에 도움되는 행동을 할 때 행복감을 느끼도록 진화해왔다. 그리고 행복감이 생기는 순간은 맛있는 것을 먹을 때와 사람과 함께할 때이다. 본글에 앞서 책의 핵심을 한 문장을 정리하면 "행복은 사람으로부터 오고, 행복감은 크기보다 빈도가 중요하다."와 같다.

 

행복에 대한 담론이 오랜 기간 이어져온 만큼 다양한 의견이 있고 저자의 생각과 다른 것도 수없이 많다. 하지만 저자의 연구 결과 만큼 본질을 꿰뚫는 말을 없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연구데이터를 토대로 도출한 결론이니 만큼 속는 셈치고 본문을 읽어 보길 추천드린다. (핵심만 읽고 싶다면 목차의 5,6만 읽으면 된다.)

 

 

 

 

행복의 기원 책 표지

 

글의 핵심

주요단어

( ※ ▽▽▽▽)

제목 : 행복의 기원

💚저자 : 서은국 💚출판사 : 21세기북스
💚출간일 : 19.01.28 (1판 27쇄) 💚구매 여부 : 도서관 대여
💚읽은 날짜 : 21.08.24~21.08.25 (2일간) 💚총평 : ★★★★☆



📚 글의 순서

Ⅰ. 내용 정리

1. 행복에 대한 기존 담론

 

2. 인간은 한낱 동물일 뿐이다.

  2-1. 이성은 과대평가 되어있다.

  2-2. 동물적인 인간

  2-3. 인간도 진화론의 결과이다. 

 

3. 진화론과 행복

  3-1. 인간의 모든 특성은 생존과 짝짓기를 위한 도구 

  3-2. 마음 속 생존 신호등 쾌, 불쾌의 감정

  3-3. 행복을 좇아 생존한 인간 

 

4. 사람, 가장 큰 행복을 유발한다.

  4-1. 혼자가 되는 것은 곧 죽음이다.

  4-2. 외로움이라는 경보

  4-3. 인간관계를 위한 뇌

 

5. 행복하기 위해서

  5-1. 행복의 속성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이다)

    ((1) 3개월, 초기화, (2) 감정은 상대적, 큰 행복을 경계하라, (3) Becoming 보단 Being, (4) 긍정적 정서의 빈도 > 부정      적 정서의 빈도,  (5) 종합

  5-2. 행복한 사람들

    (1) 행복은 유전이다. 외향성,  (2) 스크루지 영감은 행복하지 않다.,  (3) 주의점

 

6. 행복의 다른 조건들 (돈, 건강... etc)

 

7. 한국 문화와 행복 (집단주의)

  7-1. 행복한 개인주의, 불행한 집단주의

  7-2. 집단주의가 불행한 이유,  과도한 타인의식

  7-3. 물질주의 문화의 문제점

  7-4. 삶의 주인은 자기 자신

8. 결론 

 

 

Ⅱ. 후기 및 감상

[1] 감상 -

 (1) 스스로 만족하는 것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2] 책을 삶에 적용하기 - 행복을 찾아서

 

 

 


Ⅰ. 내용 정리

1. 행복에 대한 기존 담론

행복에 관한 철학은 고대 그리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시작한다. 만물엔 목적이 깃들어 있다는 목적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도 가치있는 삶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치있는 삶은 좋은(eu) 정신(daimon)인 유데모니아(eudaimonia)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말하였고 후대의 서양학자들은 이것을 행복으로 해석해왔다. 이후로 행복은 최고의 선이자 인생의 최종 목적 같은 관념이 되어버렸다

 

행복의 관념이 거창해짐에 따라 일상에서 행복하다 느끼지 못하면 정신수양이 부족하거나 물질적인 결핍이 있는 것처럼 느껴져 불행한 순간마다 부족한 무언가를 채우려는 노력을 하게 되었다. 재화가 부족한 게 원인이라 느껴지면 열심히 돈을 벌었고 여유가 없다고 느껴지면 휴식처를 찾아 떠나곤 한다. 하지만 겹핍을 충족시켜본 사람은 알 것이다. 여전히 뭔가 부족하다는 것을. 행복을 좇아 이것저것 충족해갈수록 행복의 개념은 점차 모호해진다. 이런 와중에 OECD는 대한민국이 행복지수가 하위권이라는 통계를 제시하고 또 다른 통계에선 빈곤한 국가가 행복하다는 결과를 내놓는다. 물질적인 것은 행복과 크게 상관이 없는 것인지 혼돈이 온다.

 

결국 물질의 양이 아니라 주어진 것에 만족을 해야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수많은 행복지침서를 읽어보면 "의미를 찾아라", "긍정적인 생각을 해라", "주어진 것에 만족해라"와 같은 말만 나열되어있을 뿐이다. 하지만 어딘가 공허하다. 사소한 모든 것에 만족을 하고 긍정적인 생각만 하는 사람은 구도자이지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다. 어딘가 잘못된 행복에 대한 담론은 모두 행복이 인간의 최고의 선이라는 것에서 시작한다. 행복이 인생의 최고의 선이라는 관념 때문에 행복을 이성적으로 분석하고 완벽하지 않다면 개선해야한다는 결론에 도출된다. 

 

 

 


2. 인간은 한낱 동물일 뿐이다.

2-1. 이성은 과대평가 되어있다.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일까? 본능적인 존재일까? 확실한 답을 내릴 순 없지만, 이성, 본능 두 가지 특성을 모두 보유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근대 사상사를 살펴보면 이성을 신성시하는 흐름이 관찰된다. 현대로 접어들며 이성의 절대성은 부정되고 있지만 여전히 본능보다 이성의 가치를 높이 쳐준다. 

 

이성의 역할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선택을 할때 사고의 흐름은 눈에 보이지만 본능적으로 처리되는 과정은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결정의 상당수는 본능이 선택한 결과이고 이성은 합리화할 뿐이다. 일례로 사람이 레몬 냄새를 맡게 되면 청결에 신경쓰게 된다. 세척제에 주로 레몬향이 첨가되어 있어서 무의식적으로 레몬향과 청결을 연결짓게 되기 때문인데, 눈에 보이지 않으니 청소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원인이 레몬향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소개팅자리에서도 이런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우리의 본능은 상대방의 눈 깜박임, 체취 등 인식되지 않는 여러 정보들로 상대가 애인으로 적합한지 이미 판단을 내린다. 무의식 차원에서 상대가 별로라고 판단을 내렸다면 의식 수준에서 이유를 찾게 된다. "담배 피는 게 별로네" 

 

이성이 중요해 보이는 또 다른 이유는 본능을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졸린 것을 참고 업무를 보기도 하고, 건강을 위해 배고픈 것을 참기도 한다. 욕구와 욕망을 절제하는 이성의 가치는 교육을 통해 학습되어 있다. 하지만 본능을 억제하는 것이 항상 도움되진 않는다. 생존과 연관되어 있을 때는 인간의 본능적인 면모가 부각되고, 더 도움되기도 한다. 

 

 

2-2. 동물적인 인간

이성의 역할이 절대적이지는 않다고 해도 인간을 본능에 휘둘리는 동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무의식 차원에서 진행되는 판단이 행복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까? 인간이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로 생각할 필요는 없지만 인간은 한낱 동물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행복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 ※ 인간의 동물적인 면모▽▽▽▽)

더보기

인간의 심리와 행동을 연구한 결과를 살펴보면 성적인 내용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당황스럽고 불쾌할수도 있지만 연구된 결과이니 끝까지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1) 무리하는 남성

침팬지 무리에는 알파 수컷(alpha male)이 있다. 무리에 존재하는 암컷과 짝짓기 할 수 있는 소수의 수컷들로 알파 수컷이 아니라면 암컷과 짝짓기 할 기회조차 생기지 않는다. 알파 수컷이 되지 못한 수컷들은 알파 수컷에게 도전하거나 짝짓기를 포기하고 무리를 떠난다. 우리의 조상들의 모습도 이와 비슷했다. 일부일처제가 자리잡기 전 자손번식의 기회를 가진 조상의 남녀 성비는 1대 2정도로 여자의 비율이 높았다. 이런 성비 불균형은 남녀의 기질 차이를 유발했다. 비교적 쉽게 엄마가 될 수 있는 여자는 안정지향적인 전략을 택하였고, 소수의 승리자만 아빠가 될 수 있던 수컷은 극단적인 전략을 취하였다. 승부욕이 있는 남성만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에 여성보다 남성에게서 '모 아니면 도' 같은 성향이나 매사에 승부욕이 불타오르는 성향이 더 빈번하게 관찰된다.

 

현대 사회는 알파 수컷이 존재하던 사회와는 많은 차이가 있지만 짝짓기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본능은 유전자 단위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한 실험에서 남성들에게 거리의 사진을 보여줬다. 특이한 것은 거리에 여자보다 남자가 많은 사진을 보았을 때 남자 참가자들의 성적인 경쟁심이 발동되었다. 비교 집단에 비해 더 많은 돈을 데이트 예산으로 편성했다.  미국 66개 도시의 소비 행태를 분석해봐도 비슷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여자보다 남자가 더 많이 사는 곳일수록 남자들의 과소비가 심했다. 남자가 더 많은 도시일수록 남자들의 부채율과 카드빛이 더 많았다. 짝짓기 경쟁이 심할수록 무리하게 지출하는 경향은 이성적인 판단에서 나온 결과가 아니다. 유전자에 각인된 짝짓기 경쟁에서 승리하라는 본능이 유도한 결과이다.

 

 

 

 

(2) 근친상간을 피하기 위한 본능

많은 동물들은 근친상간을 피하기 위한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다. 인간사회도 근친상간을 금지하는 문화를 보유하고 있다. 그럼 인간에게 문화적인 체계말고 본능적으로 근친상간을 피하는 시스템은 없을까?

 

한 연구에서 수개월동안 여대생들의 문자와 전화를 분석했다. 가임기와 아닌 시기의 통화 내력을 비교해보니 딱 한 사람과의 빈도가 달라졌다. 가임기가 되자 통화 빈도가 줄었는데, 바로 그 사람이 여대생 들의 아버지였다. 예로부터 근친상간이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관계는 부녀관계였다. 유구한 세월에 거쳐 부녀간 근친상간을 해온 유전자는 도태되고 가임기 때 아버지를 경계하는 시스템을 가진 유전자는 살아남아 진화하였다. 가임기 때 아버지를 피하는 여대생들은 이성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 아닌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다.

 

또 다른 근친상간을 피하는 시스템이 있다. 이 시스템은 혈연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어린 시절 함께 보낸 시간을 참고한다. 어린 시절 함께 보낸 시간이 많은 경우 형제로 인식해서 서로에게 매력을 못 느끼게 된다. 실제 형제가 아니더라도 어린 시절부터 함께한 시간이 많은 경우 결혼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행동방향이 정해지는 것이다.

 

 

2-3. 인간도 진화론의 결과이다.

새싹이 싹트는 시기를 일조량으로 결정하고 철새의 이주시기를 태양의 입사 각도로 결정하듯 인간의 많은 행동들은 유전자 단위에 각인되어 있다. 위의 사례처럼 거부감이 드는 내용도 있지만, '뱀이나 맹수를 피하고 배고프면 먹어라'와 같은 직관적인 본능들도 인간의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다. 이성이 지배하는 의식을 벗어나면 인간도 한낱 동물일 뿐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인간이 동물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현재 인간의 특성 중 대부분이 진화론에 의해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도출할 수 있다. 

 

 

 

 


3. 진화론과 행복

3-1. 인간의 모든 특성은 생존과 짝짓기를 위한 도구

진화론을 틀렸다고 믿는 사람도 있겠지만 여러 학문에서 진화론은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진화론의 핵심은 환경에 적응하여 생존한 유전자만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만약 환경에 부적합한 유전자가 있다면 후손을 남기지 못한채 해당 유전자를 보유한 개체의 수는 서서히 줄어가고 환경에 적응한 유전자가 유전자풀(pool)을 점한다는 것이다. 환경에 적응한다는 말은 무엇일까? 환경이 자연환경이든 사회환경이든 개체의 생존과 자손의 번식에 적합하다는 것이다. 즉 현재 존재하는 생명체가 가진 여러 생김새와 습성은 생존과 짝짓기를 방해하지 않고 더 나아가서는 생존과 짝짓기를 위한 도구라고 까지 말할 수 있다.

 

감각기관은 외부의 위험을 감지하기 위해, 두 발은 사냥감을 쫓거나 위협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 적합한 형태로 진화(생존해서 유전자풀을 점하다)되어 온 것이다. 나머지 신체기관도 마찬가지이다. 이성적인 사고능력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러면 마음은 어떨까? 책 <메이팅 마인드>에서는 인간의 마음 또한 진화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구라고 말한다. 앞서 말했듯이 진화론의 핵심은 생존과 짝짓기에 적합한 특성이 잔존한다는 것이다. 

 

 

3-2. 마음 속 생존 신호등 쾌, 불쾌의 감정

마음에는 수많은 감정이 존재한다. 즐거움, 사랑, 공포, 두려움, 슬픔, 기쁨 등등. 이 수많은 감정들은 한 가지 기준에 따라 나눌 수 있다. 쾌/불쾌. 우선 쾌에 근거한 감정들은 기쁨, 즐거움, 재미, 통쾌와 같은 것들이 있고 이를 한데 묶어 '긍정적 정서pleasant emotions'라고 한다. 또한 슬픔, 두려움, 분노와 같은 불쾌에 근거한 감정들을 '부정적 정서unpleasant emotions'로 분류했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뇌가 가진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쾌와 불쾌의 경험을 즉각적으로 분류해내는 것이다. 뱀, 절벽, 썩은 음식, 질병같은 것을 감지하면 뇌는 불쾌의 감정을 일으켜서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한다. 마찬가지로 향기로운 음식, 매력적인 이성 같은 것을 감지하면 쾌의 감정을 일으켜서 추구하도록 만든다. 즉, 생존과 번식에 도움되는 것들에는 쾌의 감정을 일으켜서 좇게 만들고 위협이 되는 것들에는 불쾌에 감정을 일으켜 회피하게 만드는 뇌의 작용은 생명체의 생존 신호등이다. 마음의 여러 작용은 진화의 과제를 해결하는 도구인 것이다.

 

 

3-3. 행복을 좇아 생존한 인간 

여타의 감정처럼 행복 또한 생존을 위한 도구이다. 생존과 번식을 위해서는 음식을 먹고 성관계를 맺어야 한다. 자연의 기막힌 설계는 우리가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행복한 감정을 느끼게 했고 이성과 함께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생존과 번식에 무관한 것에 행복을 느낀다고 가정해보자. 어느 산 속에 음식과 이성에 관심이 없고, 나무의 나이테를 셀 때만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 살았다. 이 사람은 눈만 뜨면 밥도 안 먹고 나무를 찍어댔을 것이다. 그리고 드러난 나이테를 세는 즐거움에 빠져 서서히 굶어 죽었을 것이다. 어찌저찌 끼니를 해결한다쳐도 짝을 만나 유전자를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음식을 먹기 위해 목숨을 걸어 사냥을 하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짝짓기에 힘쓴 사람들의 후손이다.

 

터무니 없어 보이는 이 주장은 쥐 학습연구에서 발견한 '쾌감센터pleasure center'에 의해 설득력이 올라간다. 쥐의 학습연구를 위해 쥐의 뇌에 전극을 자극했는데 쥐가 자극을 받은 장소로 되돌아가려는 행동을 했다. 자극 받은 뇌의 부위는 쾌감센터였는데, 실험진은 쥐가 스스로 자신의 쾌감센터를 자극할 수 있는 지렛대를 설치해주었다. 그러자 쥐들은 식음을 전폐하고 지렛대를 두드렸다. 지렛대로 가는 길에 장애물을 설치해도, 곁에 갓태어난 새끼가 있어도 모두 무시하고 지렛대를 두드릴 뿐이었다. 

 

쥐의 쾌감센터도 생존과 번식으로 유도하기 위한 도구였을 것이다. 인간의 행복도 생존과 번식으로 유도하는 정신적인 도구이다. 서두에서 던졌던 '사람은 왜 행복을 느낄까?'에 대한 답이 나왔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행복을 연구한 학자들이 말했던 것처럼 인간은 행복을 위해 사는 존재가 아니었다.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상황에 적절하게 행복을 느껴야만 했던 것이다

 

여기까지 왔으면 행복하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할지 감이 잡히기 시작한다. 행복은 생존과 번식을 위한 진화의 산물이고, 생존과 번식과 관련된 행복을 적극적으로 좇았던 사람들이 현재의 인류이다. 그러면 행복하기 위해서는 생존과 번식에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을 하면 된다. 그건 무엇일까?

 

 

( ※ 행복이 생존을 위한 도구라는 것에 대한 보충 설명.▽▽▽▽)

더보기

행복이 사람을 생존으로 이끄는 매커니즘은 강아지를 훈련하는 것과 비슷하다. 캘리포니아 주에 서핑하는 개가 있다고 한다. 이 개의 주인은 자신의 개가 새우깡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새우깡을 이용해서 훈련하기 시작한다. 새우깡으로 유인해서 개가 물가로 오면 개가 좋아하는 새우깡을 주고, 다음 단계에선 물에 발을 담궜을 때 새우깡을 준다. 그 다음엔 몸 전체를 담구고, 그 다음엔 서핑보드 위에 올라가게 한다. 단계를 나눠 순차적으로 유도한 결과 개는 서핑을 할 줄 알게 되었다.

 

인간이 생존으로 이끌려가는 과정도 위의 과정과 비슷하다. 행복은 인간이 밥을 먹도록 유도한다. 행복은 이성을 만나도록 유도한다. 인간이 행복에 이끌려 이것저것 하다보면 어느덧 생존과 번식이라는 과업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 생존이나 번식말고 행복이 목적이다. 하지만 생존에게는 행복은 단순히 수단일 뿐이다.

 

( ※ 매슬로우의 욕구 피라미드는 바뀌어야 한다.▽▽▽▽)

더보기

매슬로우의 욕구 피라미드에 따르면 사람이 가진 욕구에는 위계가 존재하고 하위 욕구를 충족하였을 때 상위 욕구가 생겨난다고 말을 한다. 하지만 최근 연구는 욕구의 위계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자아실현의 욕구는 매슬로우의 욕구의 최종단계에 해당한다. 생존, 번식, 안정, 인정 등의 모든 욕구가 충족되어야 생겨야 한다. 하지만 여러 사례를 보면 이상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피카소는 수많은 회화를 남긴 천재 화가이다. 천재인 만큼 꾸준하게 창작 활동 했을 거 같지만, 피카소가 왕성하게 활동했던 시기는 새로운 여인을 만나는 시점과 일치한다. 새로운 이성의 마음을 사로잡는 시기에 예술적 창의성이 폭발적으로 발현되었다. 자아실현에 해당하는 피카소의 예술성은 생리적 욕구를 위해 발휘되었다. 이런 현상에 심리학자들은 '피카소 효과 Picasso Effect'라는 명칭까지 붙여주었다.

 

피카소 효과는 실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동기유발을 위해 돈은 제시한 그룹과 매력적인 이성과의 해변 산책을 상상하게 한 그룹으로 나눠 만화에 재미있는 캡션을 달라는 요청을 했다. 결과물을 다른 사람들에게 평가한 결과, 매력적인 데이트를 상상한 그룹이 더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단순히 상상한 것만으로도 창의성이 증진되었다.

 

피카소 효과를 보면 창의성은 성선택을 위한 특성처럼 보인다. 좀더 생각을 확장해 보면 수많은 자아성취가 모두 식욕과 성욕을 위한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사람들은 왜 세계적인 축구선수가 되고 싶어하고,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할까? 진화생물학적인 해석은 모두 인간의 본질적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매슬로우의 욕구 피라미드는 이제 무너질 때이다.

 

 


 

4. 사람, 가장 큰 행복을 유발한다.

행복에 가장 많이 기여하는 것은 사람이다. 어째서일까? 앞서 쾌와 불쾌는 생존 신호등이라고 서술했다. 그렇다면 강렬한 쾌와 불쾌의 감정을 유발하는 원인이 생존에 가장 핵심적이고, 생존의 핵심 조건에 근접할수록 행복해지지 않을까? 

 

잠시 과거의 삶을 반추해보기를 바란다. 가장 강력한 기쁨을 느꼈던 적이 언제인가? 극렬한 고통을 느꼈던 적은 언제인가? 인간이 경험하는 가장 강렬한 고통과 기쁨은 모두 사람에게서 비롯된다. 오랜 이별 뒤의 만남, 칭찬, 인정 인간이 느끼는 강한 기쁨은 사람을 통해 온다.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이별, 짝사랑 같은 고통스러운 경험도 사람으로 부터 온다. 

 

행복의 핵심은 사람이다. 혹시 행복의 다른 요인이 떠오른다면, 그것을 충족시킨 자신을 상상해보라. 단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타인이 없다면 대부분의 요인은 공허해진다.  

 

 

4-1. 혼자가 되는 것은 곧 죽음이다.

진화의 과정에서 사람과 함께있는 것이 왜 중요했을까? 인간은 왜 서로를 필요로 할까? 이것 역시 생존과 번식으로 설명된다. 생태계에서 한 개체는 포식자가 되기도 하지만 피식자가 되기도 한다. 인간도 마찬가지로 피식자가 될 수 있다. 맹수가 인간을 사냥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고 해보자. 무리를 지어 서로를 지켜주는 사람들보다는 혼자서 돌아다니는 사람을 손쉽게 사냥할 수 있을 것이다. 무리를 지었을 때 유리하다는 것은 초식동물에게서도 관찰된다. 초원의 물소나 매에게 사냥당하는 비둘기도 무리짓고 있을 때 사냥당할 가능성이 낮아진다.

 

무리를 짓는 것은 식량 확보의 관점에서도 유리하다. 사냥을 매번 성공할 수는 없다. 오늘 사냥에 실패했다면 옆집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고, 거꾸로 사냥이 잘되었다면 옆집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 무리를 지어 식량을 공유하는 것은 사냥 실패에 대한 리스크 관리를 해준다. 이런 경향은 흡혈박쥐에게도 똑같이 발견된다. 

 

생존 뿐만 아니라 번식을 위해서도 무리를 짓는 게 유리하다. 생존 기술이 매우 뛰어나서 홀로 살아남을 수 있다해도 이성이 없다면 후손을 남길 수 없다. 하지만 무리에 속해있다면 이성과의 접촉이 빈번해져서 자손을 남기기에도 유리하다. 

 

자연에 있는 동식물을 떠올려보면 인간은 홀로 있을 때 한없이 약한 개체이다. 굳이 길게 이유를 찾지 않더라도 혼자가 되는 것은 곧 죽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4-2. 외로움이라는 경보

다리가 절단되면 생존에 위협이 되기 때문에 고통이라는 경보를 울린다. 고통은 어디에 작용할까? 다리부터 떠오르지만 고통은 뇌에서 발생한다. 상처를 감지한 뇌의 전방대상피질이 활성화 되어서 고통의 신호를 전달한다. 다리가 절단되는 것만큼 사회에서 단절되는 것도 치명적이기에 뇌는 '사회적 고통'을 겪는다. 사회적 고통은 외로움, 배신감, 이별, 고독과 같은 감정으로 느껴지는데 신기한 것은 사회적 고통의 신호와 신체적 고통의 신호가 뇌의 동일한 부위에서 발생한다. 앞서 말한 뇌의 전방대상피질이다. 그래서 몸이 아플 때 먹는 진통제를 먹으면 인간관계에서 오는 고통도 덜게 된다. 

 

놀라운 것은 외로운 사람들은 더 추위를 많이 탄다. 따돌림 당하는 상상만 해도 더 춥다고 느끼고 따뜻한 음식을 찾게 된다. 뿐만 아니라 외로운 사람은 산의 경사를 더 가파르다고 느끼고 신체적 고통도 잘 견디지 못한다. 심지어 상처회복 속도도 떨어지고 수명마저 짧아진다고 한다. 사회적 고립은 실질적인 위협이라는 것이 유전자 단위에 각인되어 있다.

 

 

 

4-3. 인간관계를 위한 뇌

뇌의 발전과 쓰임을 보면 뇌는 인간 관계를 잘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 같다. 인류학자 로빈 더바에 의하면 인류의 진화 과정 중 뇌 발달이 활발했던 시기는 집단의 크기가 팽창할 때라고 한다. 낯선 사람과 만나 생각과 의도를 파악하고, 설득하고 속이는 과정은 더 높은 지능을 요구했고 인류의 뇌성장의 촉매가 되었다. 또한 우리의 뇌는 항상 사람에 대해 생각한다. 일상의 대화를 엿들어보면 70%가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고 한다. 사람이 느끼는 대부분의 희노애락의 원인도 사람이다. 즐거움와 행복은 사람을 원하도록 만들고 특히 이성과 함께하고 살을 비빌 때면 뇌는 강렬한 쾌감 신호를 보낸다.

 

뇌의 성장과정에서도 사람이 지대한 영향을 했고, 희노애락의 원천도 사람이며, 항상 사람의 생각만 하는 뇌는 인간관계가 목적인 거 같다. 이런 뇌를 가진 우리는 왕성한 사회적 식욕을 가진 '극도로 사회적인 존재'다

 

 

 


5. 행복하기 위해서

사회적인 뇌를 가진 우리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행복하고 사람과 단절되면 고통을 느끼는 존재들이다. 행복의 핵심이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이제 어떤 방식으로 사람과 만나야 행복을 극대화 할 수 있는지 알아봐야 한다. 그러기 위해 잠시 행복의 속성을 알아보자.

 

5-1. 행복의 속성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이다)

(1) 3개월, 초기화

행복은 사람이 생존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주는 지침서이다. 그런 중요한 신호가 무분별하게 켜지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을 것이다. 또한 한 번 켜진 신호가 다시 꺼지지 않는다면 신호의 기능을 상실한다. 예를 들어 도둑의 침입을 막기 위해 방범창에 경보를 설치했는데 자기멋대로 켜지면 도움도 안되고 오히려 방해가 될 것이다. 또 도둑이 침입할 때 적절하게 경보음이 울려서 체포를 하더라도 경보가 다시는 꺼지지 않는다면 도움이 되지 않는 것과 같다.

 

행복의 속성도 마찬가지다. 행복은 도움이 되는 정확한 순간에 켜져야 한다. 그리고 상황이 종료되면 행복한 감정이 사그라드러야 한다. 이런 현상을 감정의 '적응adaptation'이라고 한다. 야속한 일이지만 행복한 상황이 종료되고 시간이 흐르면 행복감이 서서히 희미해지고 종국에는 쾌감이 '초기화reset'된다. 

 

행복한 삶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초기화되는데 까지 걸리는 시간이 중요해진다. 저자는 대학생들을 2년간 추적조사 한 끝에 초기화까지 3개월이 걸린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3개월의 영향은 좋은 일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뿐만 아니라 나쁜 일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도 포함한다. 

 

 

(2) 감정은 상대적, 큰 행복을 경계하라

3개월 주기로 초기화가 된다면 3개월마다 큰 행복을 경험하면 될 거 같지만 감정이 상대적이라는 특성 때문에 그리 좋은 생각은 아니다. 감정이 상대적이라는 것의 의미는 감정은 극단적인 경험을 겪으면 감정 반응의 기준선이 변화한다는 것이다. 간단하게 100억 복권 당첨같은 일확천금의 경험을 하고 나면 1억을 공짜로 받아도 기쁘지 않은 현상이다. 꾸준히 행복한 삶을 지속하려면 극단적인 경험은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 인생의 행복은 거창한 즐거움 속에 있지 않다. 언뜻 보기에 시시해보이는 소소한 즐거움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느끼는 인생에 행복이 깃들어 있다.

 

 

 

 

(3) Becoming 보단 Being

사람들에게 행복한 경험을 떠올려보라고 하면 보통 특정 순간을 떠올린다. 고대하던 시험에 합격하는 순간, 승진하는 순간, 금메달을 목에 거는 순간 등등. 하지만 성취의 순간들은 일시적이고 적응되어 금세 사라진다. 그리고 남는 것은 평범한 일상이다. 고3 수험생이 꿈에 그리던 의대에 합격하는 순간에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일 것이다. 그런데 1년 뒤 학교 도서관에서 치열하게 공부하고 있는 의대생에게 가서 행복하냐고 물어보면 과연 행복하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을까? 공부할 자료가 쌓여 막막한 상황인데 그런 질문을 받는다면 xxx보듯이 쳐다볼 수도 있다. 수많은 미디어에서 화려한 변화 속에서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는 사람들을 비춰줘서 Becoming의 순간이 행복의 핵심처럼 보이지만, 정작 행복의 핵심은 평범하게 굴러가는 일상(Being) 속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으며 미래에 도달할 목표를 향해 분투하지만, 상상하는 만큼 행복해지지도 불행해지지도 않는다. 행복하기 위해선 일상 속 구체적인 경험을 어떻게 채워나가느냐에 달려있다.

 

 

 

(4) 긍정적 정서의 빈도 > 부정적 정서의 빈도

즐거운 일들로만 인생을 채워나갈 수 없다. 슬프고 가슴아픈 일들도 일어나기 마련인데, 그때 경험하는 부정적 정서보다 긍정적 정서를 더 자주 경험해야 행복하다고 느낀다. 즉, 긍정적 정서를 느끼는 빈도가 부정적 정서를 경험하는 빈도보다 높아야 한다.

 

 

(5) 종합

위의 속성들을 종합해보면 3개월이 지나면 초기화 되는 즐거운 경험을 일상(being) 속에서 소소하고 자주 즐기는 것이 행복한 삶을 위한 길이다. 우리는 이따금 발생하는 행복한 순간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안정적이고 꾸준한 행복한 삶을 위해 살아야 한다. 그러려면 명심해야할 것은 행복은 한 방에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은 기쁨을 반복적으로 자주 경험해야한다. 즉,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5-2. 행복한 사람들

한 연구에서 행복도가 상위 10%인 사람과 하위 10%인 사람들을 비교했다. 수많은 변인 중 차이를 보인 것은 딱 2가지였다. 첫 번째는 성격, 두 번째는 대인관계이다. 또 다른 연구에서 행복한 사람과 불생한 사람들이 하루 중 다른 사람과 보내는 시간이 몇 %인지 조사하였다. 행복한 사람들은 하루의 약 70%를 다른 사람과 보냈고 불행한 사람은 약 50%의 시간을 보냈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설문을 해보니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은 다른 사람과 보내는 시간 비율이 2배정도 차이가 났다.

 

행복한 사람은 다른 사람과 자주 만나는 사람이다. 좀더 정확히는 외향적이고 정서적 안정감이 높으면서 사회적 관계의 빈도와 만족감이 높은 사람들이다. 

 

 

(1) 행복은 유전이다. 외향성

이쯤에서 불편한 진실을 하나 말하고자 한다. 행복은 유전이다. 유전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 손쉽게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행복한 사람들을 관찰해보면 자주 웃고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한다. 그래서 겉으로 드러난 행복의 증상들을 따라하면 행복해 질거라 생각해 자주 웃고 긍정적인 생각을 해본다. 물론 도움은 되지만 행복의 원인을 가진 사람만큼 행복해지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그 원인은 유전으로 물려받은 기질로 형성된 외향성이라는 성격특질이다. 외향성이 행복과 관련있다는 사실은 확증편향식의 잘못된 연구결과 아니라 다른 성격 연구에서 우연히 발견된 특성이다.

 

사람의 성격은 5가지 특질(외향성, 신경증, 성실성, 개방성, 원만성)에 의해 결정되는데 환경의 영향으로 어느정도 변화할 순 있지만 유전으로 물려받은 한계를 뛰어넘어 성격이 변하지는 않는다.(by 책<성격의 탄생>) 그렇다고 비관할 필요는 없다.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행복할 순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서술해온 내용대로 행복의 핵심은 일상에서 사람에게 편안함과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외향성이 행복에 유리한 이유는 자극과 즐거움을 좇는 특성때문에, 사람을 찾아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외향적인 사람이 행복한 이유는 외향성이라는 성격 자체보다는 외향성에 기인한 사회성에 있다.

 

진화론적으로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즐거움을 느낀다고는 하였지만 내향적인 사람들은 동의하기 힘들수도 있다. 하지만 연구결과를 살펴보면 내향적인 사람도 외향적인 사람들처럼 혼자있을 때보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더 행복했다. 내향적인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데 덜 적극적인 이유는 싫기때문이 아니라 피곤해서 그런 것이다. 내향적인 사람들도 막상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 시작하면 정말 즐거워 한다. 하지만 즐거움에 비례해서 피로가 빠르게 쌓이고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될 뿐이다.

 

사람과 어울리면 항상 즐겁고 좋은 감정만 얻지 않는다. 때때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내향적인 사람들은 사회적 스트레스를 더 민감하게 느끼고 경험한다. 즐거움과 동시에 스트레스를 느끼니 사람을 기피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짐을 지고 등산하는 비유를 사용했다. 외향적인 사람이나 내향적인 사람이나 오르고 싶어하는 산을 동일하다. 하지만 내향적인 사람은 무거운 짐을 지고 올라가고 외향적인 사람은 가벼운 짐을 지고 올라간다. 비교적 가벼운 짐을 진 외향적인 사람들은 손쉽게 정상에 오르지만 내향적인 사람들은 짐이 버거워 정상에 오르기 전에 포기하는 사람이 많을 뿐이다.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선택이다. 한순간의 결정적인 선택이 아닌 일생동안 내리는 크고작은 선택들이 인생의 방향을 조정한다. 외향적인 사람은 자연스럽게 사람과 어울리는 방향으로 선택하지만 내향적인 사람은 의도적으로 선택을 조정해야한다. 하지만 사람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우리는 행복해진다. 명심하자. 성격은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치지만, 정작 인생의 그림을 그리는 것은 순간순간의 선택들이다.

 

 

 

 

(2) 스크루지 영감은 행복하지 않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의 주인공 스크루지는 구두쇠다.  돈을 모으기만 할 뿐 베풀 줄 모르는 인색한 스크루지는 과연 행복할까? 돈과 행복에 관한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력을 갖추면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행복에 큰 영향을 끼친다. 연구 결과, 행복한 이들은 돈을 사람과 관련된 것에 사용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즉, 사람과 어울리는 여행에 돈을 쓰는 사람이 사치품에 돈을 쓰는 사람보다 행복하다. 하지만 사치품을 구매하는 사람도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목적이라면 홀로 여행을 떠나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사람보다 행복하다.

 

돈을 사람을 위해 사용할 때 행복하듯이 자신이 가진 다른 자원도 사람을 위해 사용한다면 행복한 삶에 도움이 된다. 자원봉사가 대표적인 예시이다. 자신이 보유한 시간자원을 남을 돕는데 사용하면 행복감이 저절로 따라오게 된다. 또한 자원을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 쓸 때 더 행복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결국 자신이 가진 것을 남에게 베풀지 않았던 스크루지 영감의 행동은 행복한 삶에 기여하지 못했다.

 

 

 

(3) 주의점

결국 사람이 핵심이지만, 모든 사람이 행복에 도움이 되진 않는다. 사람과의 만남은 즐거운 경험을 선사하지만 불쾌한 감정을 전달하기도 한다. 행복에 도움되는 사람은 나에게 즐거움과 편안함을 주는 사람이다. 의무적으로 만나는 사람이나 가기 싫은 회식자리는 우리를 피곤하게 할 뿐이다. 그렇다고 이미 친한 사람하고만 교류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인간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에 엄청난 즐거움을 느낀다.

 

 


6. 행복의 다른 조건들 (돈, 건강... etc)

사람을 제외하고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풍부한 재력, 건강한 몸, 빛나는 외모 등등. 여러가지 있을 것이다. 특히 돈은 행복을 확실하게 가져다 줄 것이라 믿고 착실하게 벌어 차곡차곡 모아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생의 여러 조건(돈, 건강, 종교, 학력, 지능, 성별, 나이)들을 모두 고려해도 행복의 10~15%밖에 예측하지 못한다. 즉, 행복의 핵심이 아니다.

 

사람의 뇌는 불행한 것과 행복한 것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불행한 것이 해소되면 행복해지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불행의 감소와 행복의 증가는 전혀 다르다. 이를 '긍정.부정 정서의 독립성'이라고 부르는데, 갈증이 해소되는 순간을 관찰하면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아스팔트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더운 여름날 입이 바짝바짝 마르는 갈증을 느끼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가방에서 물병을 꺼내어 물을 마시기 시작한다. 갈증이 해소되고 입안이 촉촉해질 때까지는 물을 마시는 것이 정말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갈증이 해소된 이후에는 어떨까? 물 마시면 배만 차고 행복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인생의 여러 조건들도 이와 마찬가지다. 결핍이 된 조건을 충족할 때는 불행이 해소되면서 행복을 느끼지만, 일정 수준에 도달하고 나면 전혀 도움되지 않는다. 비타민과 비슷하다. 부족하면 아프지만 일정수준을 넘어서면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인생조건을 얼마나 가져야지 적당한 것일까? 불행을 면하기 위해서는 어느정도여야 할까?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객관적 조건과 행복에는 유의미한 관계성이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주관적 조건은 행복과 관련이 있었다. 외모의 경우 객관적인 미모는 행복과 관련 없지만 스스로 생각하는 아름다움은 행복과 관련이 있었다. 객관적 조건이 어찌되었든, 자신의 외모에 만족하고, 보유한 자산에 만족하고, 신체조건에 만족하면 인생조건으로 불행할 일이 없다.

 

 

 

 


7. 한국 문화와 행복 (집단주의)

지금까지 행복하기 위해 개인 차원에서 행할 수 있는 것들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회의 행복을 위해서는 우리 삶의 방식에 영향을 주는 문화, 공기처럼 우리를 휘감고 있는 문화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7-1. 행복한 개인주의, 불행한 집단주의

문화를 구분하는 여러 방식 중 하나는 집단주의와 개인주의로 구분하는 것이다. 두 문화의 차이를 구분하는 핵심을 알기 위해서는 개인과 집단이 충돌했을 때 누구의 의견을 더 존중하는지를 보면 된다. 개인의 가치와 감정, 선택을 더 존중한다면 개인주의, 집단의 가치와 선택을 더 존중한다면 집단주의다. 예컨대, 밤까지 이어지는 회식자리, 불참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사원에게 회사는 회식 참여를 강요하고 수용하지 않으면 철없고 이기적이라는 낙인마저 찍어버리는 문화는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것이고, 회식의 참석 여부를 개인의 자율에 맡긴다면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문화이다.

 

한국, 일본, 싱가포르. 이 세 국가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하나는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국가이고, 또 다른 하나는 행복도가 낮은 국가이다. 안타깝게도 집단주의는 개인의 행복에 방해가 된다. 반면 개인주의 문화는 개인의 행복에 더 유리하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속한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는 행복수치가 특히 높은 편인데, 그 원인을 일반적으로 고소득과 사회복지 시스템에서 오는 결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두 오해이고,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행복의 원천은 자유, 신뢰, 다양한 관심에 대한 존중과 같은 개인주의 문화에서 온다고 한다. 또한 일반적으로 부국으로 구성된 북미와 유럽의 국가들의 높은 행복 수치도 개인주의 성향의 영향을 제거하고 나면 소득과 행복 사이에 상관관계가 거의 소멸된다고 한다. 

 

7-2. 집단주의가 불행한 이유,  과도한 타인의식

집단주의에 속한 사람들은 왜 더 불행할까? 첫 번째 이유는 심리적 자유감이 낮기 때문이다. 개인의 취향과 감정보다는 집단의 뜻을 중시하기 때문에 자기 뜻대로 자유롭게 사는 것이 제한 받는다. 더 심각한 문제는 다음에 나타난다. 개인보다 집단의 뜻을 더 존중하는 집단주의는 상대적으로 응집력과 통일성이 더 높다. 그래서 공동의 목표가 생겼을 때 하나가 되어 강한 추진력을 발휘한다. 그래서 위기 상황을 잘 극복하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집단이 하나가 되어 움직이기 위해서는 내부에 수직적인 위계가 존재해야 한다. 서열이 정해진 구조 속 자신의 역할을 맡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 만약 역할 수행이 미흡할 경우 집단의 걸림돌이 되고 비난 받는다.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주위의 평가에 신경 쓰고 자연스레 타인 중심적인 생각이 생겨난다.  

 

타인 중심적인 생각은 상상이상으로 치명적이다. 인간의 뇌는 생존을 위해 사회적으로 진화해왔다. 살기 위해 타인과 관계를 신경쓰고 자신에 대한 타인의 평판을 파악한다. 즉 타인의 평가를 의식하는 것 자체가 생존과 직결되어 있어서 집중하게 되고, 오랜 집중은 피로하고 불안을 유발한다. 타인의 평가를 신경쓰게 만들어 불안감을 조성하는 심리자극을 '트리어Trier 처치법'이라고 부르는데, 타인의 평가를 의식하는 정도의 간단한 트리어 처치법만 받아도 심박수증가, 불안을 경험한다. 집단주의 문화는 일생동안 구성원을 트리어 처치법 속에 살게 만든다. 

 

타인 중심적인 생각의 또다른 영향은 매사를 타인의 시각으로 판단하게 된다는 것이다. 객관적인 업무성과부터 시작해서 개인적인 경험인 행복과 불행이라는 감정까지도 말이다. 개인의 행복을 타인의 시각으로 판단하기 시작하는 것은 겉으로 보이는 조건으로 행복할만한지 판단하는 것과 같다. 위에 언급했던 행복에 핵심요소가 아닌 외적 요인들로 판단하는 것이다. "저 사람은 돈이 많으니 행복할만 하네", "잘생기고 이쁘니 행복할만 하네"와 같이 객관적인 잣대로 행복을 평가하기 시작한다. 특히 어린 시절부터 시험에 길들여진 한국인은 정답을 찾는 사고 습관 때문에 행복하기 위한 조건들에 정답을 찾고 거기에서 벗어나면 불안함 마저 느낀다. 행복은 객관적인 조건으로 정답을 정할 수 없는 사적인 경험임에도 말이다. 

 

집단주의 문화는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게 만들어, 평가의 기준을 타인의 시각으로 옮겨놨다. 종국엔 타인의 시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외적요인에 집착하여 물질주의 문화까지 유도한다.

 

7-3. 물질주의 문화의 문제점

돈의 힘은 위대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많은 돈은 수많은 편의 시설을 이용할 수 있게 해주고 삶의 질을 높여준다. 과장해서 표현하면 돈만 있으면 홀로 생존하는 것도 가능하다. 자본주의 세상에 적응해서 자산을 축적하면 큰 걱정 없이 살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간의 뇌는 아직 자본주의 세상에 맞춰 진화하지 못했다. 인간의 뇌는 여전히 원시사회의 생존조건에 따라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생존의 최우선 조건으로 여긴다. 새로운 생존 수단인 돈을 모을 때 보다 과거의 생존 수단인 사람과 함께 할 때 더 행복해진다. 

 

물질주의 문화는 재화를 과대 평가한다. 돈이 새로운 생존 수단인 만큼 돈만 있으면 혼자서 살 수 있을 것 같은 자기 충만감에 빠진다. 더욱이 돈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사람에 대한 관심은 줄어든다. 한 실험에서 돈을 지켜본 것만으로도 타인을 덜 도우려하고 도움도 덜 요청한다는 것을 관찰했다. 돈은 삶의 편의를 올려줄 수는 있지만 사람으로부터 분리시켜 행복을 방해한다. 

 

 

7-4. 삶의 주인은 자기 자신

집단주의 문화에 기인한 과도한 타인의식은 행복을 저해한다. 과도한 타인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한 결정적인 방법은 다른 사람들의 평가와 시선에 덜 신경쓰는 것이다. 말장난 같지만 한국을 떠나 이민갈 것이 아닌 이상 개인 차원에서 방법을 강구할 수 밖에 없다. 대한민국은 서서히 개인주의로 바뀌어 가고 있다지만 개개인의 가치와 감정을 완전히 존중하기 까지는 어느정도의 시간이 걸릴 지 알 수 없다.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내 삶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실제로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행복하기 위해선 삶의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

 

 

 


8. 결론 

행복의 존재 이유는 인간을 생존과 자손 번식으로 이끄는 것이다. 새로운 생존 수단인 돈에 적응하지 못한 원시적인 뇌는 여전히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 최고의 생존 수단이라고 인식한다. 그래서 사람과 함께 할 때 쾌감을 느낀다.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이런 고지식한 뇌를 잘 활용하는 사람들이다. 편안함과 즐거움을 주는 사람과의 만남으로 채워넣은 일상, 이것이 바로 행복한 삶이다.

 

 


Ⅱ. 후기 및 감상

[1] 의문점 -

(1) 스스로 만족하는 것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더보기

결국 행복하기 위해서는 불행의 요인을 충족시키고 행복의 요인인 사람과 빈번한 접촉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불행의 요인을 충족하는 기준은 주관적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완전하게 스스로 만족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외모, 돈과 같은 외적 요인에 불만을 품게 되는 것은 타인의 평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외모에 부정적인 평가를 더 빈번하게 들으면, 만족하고 있던 마음도 깨지기 마련이다. 우리 사회는 외모에 대한 조롱이 만연하다.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놀림의 기억은 정신 깊숙히 각인되어 자신의 외모를 평가하게 된다. 놀림의 대상이 자신이 아니여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라고 하였다. 누군가가 놀림받는 것을 보고 자신이 놀림의 대상이 될 가능성은 없는지 걱정하며 자신의 외모와 비교하는 것은 어떨 수 없는 본능이다.

 

특정 신체 특징을 보고 조롱하는 문화 뿐만 아니라, 미디어의 영향도 외모에 대한 만족을 떨어트린다. 미디어에 노출되는 잘생기고 이쁜 사람들은 외모 분야의 최상위 포식자 처럼 군림한다. 일반 사람들은 뛰어난 외모를 추종하고 자신의 외모와 비교하게 만든다. 절대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의 외모에 만족하는 것 같다가도 빼어난 외모의 화려한 모습을 볼 때면 어딘지 모를 씁쓸함을 느끼곤 한다. 이 쓸쓸함의 근원은 사람들의 인정이다. 외모가 뛰어나면 굳이 뭘 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인정받는다. 사회적인 동물인 이상 주변의 주목을 받는 특징을 소망하게 된다. 다만 외모는 바꿀 수 없기에 현실과 타협하고 스스로를 위안할 뿐이다.

 

돈도 외모와 비슷하게 가난이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명확한 액수를 기준으로 부유함을 규정하기도 한다. 부자의 풍족한 삶을 미디어로 노출시켜 일상에 씁쓸함을 남기기도 한다. 하지만 돈은 더 잔인한 면이 있다. 자산의 규모는 인관관계의 범위를 한정한다. 학창시절에는 느끼기 힘들지만 경제력을 갖춘 성인이 되었을 때는 아무래도 자신과 비슷한 경제 수준을 갖춘 사람과 어울리게 된다. 돈이 있고 그 돈을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쓰고 싶은데, 어울리는 친구가 그 돈을 부담할 여력이 되지 않는다면, 몇 번은 돈을 내줄 수 있지만 반복될 경우 어느덧 부담이 된다. 신세지는 친구도 똑같이 부담이다. 경제수준은 둘을 은근하게 분리한다. 인간관계의 분리. 사회적 뇌를 가진 우리들에게 씁쓸함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매일같이 외모로 지적받지 않더라도, 수중에 돈이 없어 굶어 죽진 않더라도, 기타 외적 조건이 생존과 번식을 위협하는 수준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만족을 저해하는 씁쓸함을 느낄 수 있다. 나의 생각일 뿐이지만, 개인적인 문화인 외국에서도 덜 하면 덜 했지 아예 없진 않을 거 같다. 현대 사회 시스템이 유지되는 동안 쓸쓸함을 피할 수 없을테고, 쓸쓸함을 피하기 위해서는 외부와 단절을 해야하는데 이것은 행복의 핵심과 멀어지는 것이기에 고려할 가치가 떨어진다. 

 

외적 요인에 대한 완전한 만족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행복은 긍정적 정서를 부정적 정서보다 더 빈번하게 느끼는 삶 속에 나타난다는 책에 말에 따르면 해결책이 보이는 듯 하다. 살면서 이따금 떠오르는 씁쓸한 감정을 무시해도 좋을만큼 편안하고 즐거움을 주는 상대와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 부정적 사고가 티끌이 될 정도로 즐거움 경험으로 일상을 채워나가는 것. 이건이 그나마 현실적인 해결책인 것 같다.

 


[2] 책을 삶에 적용하기▽▽▽▽

더보기

나의 인생 목표는 행복이었다. 특정 순간 마다 행복을 잠시 제쳐두고 성취를 위해 신체와 정신을 불사르곤 했지만, 모두 행복한 삶을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행복에 대한 갈망이 시작된 순간부터 행복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할지 많은 고민을 하였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모호해지는 행복에 대한 정의는 매번 변화했다. 어떨 때는 즐거움, 어떨 때는 쾌락, 어떨 때는 걱정없는 평온함. 행복을 정의하는데 갈팡지팡 했던 이유는 '정의는 단순명료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더욱이 특정한 느낌으로 여겨졌던 행복이 여타의 감정이나 느낌처럼 직관적일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을 해왔었다.  정처없이 떠다니던 행복의 정의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과거를 반추하며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다가 행복과 연결되는 단어는 순간이 아니라 시절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단순하게 비루한 내 기억력 탓일수도 있지만 행복했던 순간과 아닌 순간을 나누는 기준은 '어린 시절, 학생시절, 좀더 세분화해서 몇 학년 시절'처럼 단위가 기간이었다.

 

그때부터 행복했던 시절과 그렇지 않은 시절의 차이를 분석해나갔다. 사소한 것들을 배제하며 추적한 끝에 결론에 도달하였다. 행복했던 시절은 큰 걱정이 없다는 것과 즐기던 취미 생활이 존재했다는 것이었다. 그때쯤부터 행복은 "걱정거리 없는 평온한 상태로 즐거운 일을 하는 것"이 되었다.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 걱정을 유발하는 것들을 찾아 제거하고 즐거운 활동들을 찾아 구체화 하기 시작했다. 즐거운 활동은 생각보다 별 것 없었다. 재밌는 만화보기, 흥미진진한 드라마 정주행하기, 여운을 남기는 영화 감상하기 등등... 목록이 구체화 되자 실천은 빨랐다. 현재 제거할 수 있는 불행의 요인을 모두 제거하고 즐거운 활돌들을 영위해나가기를 몇 달. 일상이 풍부해지는 기분이 들면서도 행복의 정의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간과하고 있던 부분은 책<행복의 기원>을 읽고 발견할 수 있었다. 핵심은 사람이었다. 사실 <행복의 기원>을 읽기 전에도 사람과 함께하는 순간이 즐겁고 홀로 있을 때 외롭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으로부터 오는 행복함의 크기를 과소평가했고, 또한 사람으로 받는 영향은 스스로 통제할 수 없어서 너무 불확실하다고 여겼다. 행복에 정의에는 규정하지 않았지만 꼭 충족되어야할 필요조건으로는 요인을 통제하여 안정적으로 행복을 지속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행복의 정의에서 사람은 크게 고려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책을 읽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행복했던 시절에는 사회적 만남의 빈도와 만족감이 크던 시기였다. 순간적으로 충격을 받았다. 행복을 정의하는데 필요조건을 상정하면서 확증편향에 빠져있었던 자신을 마주하는 것이 당혹스러웠다. 동시에 행복한 삶의 활로를 찾았다는 쾌감이 폭죽처럼 터져나왔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현재까지의 삶은 축복받은 것처럼 영화롭진 않았지만 꽤 만족스러웠다. 이런 만족감의 근원이, 행복의 시절을 만들어주건 근원이 내 주변을 지켜주던 사람들이었다는 알게된 순간 감사함에 눈물이 나왔다. 동시에 나 자신이 사람들의 행복한 삶을 지탱하는데 도움이 되자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더 신경쓰고, 더 편안하고, 즐겁게 해줘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제는 행복한 삶이 그려지는 것 같다. 낯익은 얼굴들이 보인다. 


 

 

 

 

반응형

댓글